▲ 구은회 기자

한진중공업에 얼마 전 신규노조가 생겼다. ‘한진중공업노조’는 지난 11일 부산시청에 설립신고서를 접수했고, 하루 만인 12일 설립신고서를 받았다. 기업별노조이고 별도의 상급단체는 없다.

지난해 7월부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의 설립이 법으로 보장된 마당에 새 노조가 생긴들 놀랄 일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기존노조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와 새 노조인 한진중노조가 공정하게 조직경쟁을 벌일 차례다.

정작 놀랄 대목은 따로 있다. 한진중노조가 한진중지회에 ‘교섭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설립 첫날 17명이었던 조합원수가 열흘도 안 돼 400여명으로 급증했다. 노조는 "조합원 과반을 차지했다"며 지회에 교섭권과 체결권을 이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억지 주장이다. 지난해 7월 복수노조가 시행된 뒤 한진중 회사측과 한진중지회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았다. 이를 통해 지회는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획득했고, 교섭대표권은 오는 7월까지 유지된다. 새 노조가 지회에게 교섭권 이관을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새 노조가 노조법의 ABC를 모르는 초짜이거나, 의도적인 여론전을 벌이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신규노조가 생긴 뒤 현장에서는 각종 '카더라 통신'이 판을 치고 있다. 대개 “새 노조에 가입해야 설 연휴 전에 생계지원비를 준다더라”, “새 노조에 가입하면 휴업에서 일찍 복귀시켜 준다더라”는 내용이다. 곤궁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둘러싼 장기 파업, 선박 건조물량 감소에 따른 고정 초과근로수당 삭감, 반복되는 휴업 등으로 생계를 꾸려 가기 막막해진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바꾸면 돈을 준다’는 얘기는 흘려버리기 어려운 유혹이다. 새 노조 조합원이 급증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 언론의 호들갑처럼 ‘온건노조의 돌풍’ 때문이 아니다.

하기야 노사갈등이 벌어졌던 사업장에 회사의 비호를 받는 신규노조가 생기고, 노-노 갈등이 번지고, 기존노조가 무력화되는 패턴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KEC나 유성기업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복수노조 제도가 아주 강력한 노조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때 회사에 ‘찍힌’ 노조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응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구제율이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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