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원장

며칠 전 이지현 전 재능교사노조 법규부장이 암투병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많은 동지들의 곁을 떠났다. 모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기 전 곧 회복할 거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배웅을 해 주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기 직전 민주노총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99년 11월 중순께로 기억한다. 재능에서 학습지 교사로 일하던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조의 파업에 연대와 지지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고, 그 일로 김선수 변호사님 사무실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였다. 해고 사건이 있은 이후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결합해 재능에서 일하는 학습지교사들도 노조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자주 만나게 됐다. 해고 직후 만난 그 자리에서 나는 부당해고임을 확신하는 그들에게 말을 얼버무리고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김선수 변호사님도 마찬가지셨던 것으로 안다. 훗날 노조가 설립되고 복직도 한 이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저 사람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가'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확실하게 부당해고라고 답변을 해 주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당해고'라고 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판례는 학습지교사는 특수고용이라고 하면서 노동자성을 부정했다. 노동자가 아니니, 부당해고란 말을 꺼낼 수도 없다는 법적 논리인 것이다. 법원으로 갔을 때의 예상되는 결과를 알면서도 당사자들의 확신에 동조할 수 없는 변호사의 운명과 상식적으로 부당해고임이 명명백백한 사건 앞에서 김 변호사님과 나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고 얼버무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노동법의 적용에서 배제시켜 버리기 때문에 노동법의 어떤 법리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우리를 방어할 수도 없다. 당시 법규부장으로 일하면서 이지현 동지가 느꼈을 답답함은 변호사보다 더 컸을 것이다. 우리도 시원한 답변 한 번 해 주지 못하니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모든 문제는 투쟁만이 해결해 줄 수 있었다. 단체협약을 어렵게 체결했지만 사측이 이를 위반해서 고소하면 검찰 공안부는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조도 아니고 단체협약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혐의 처분을 해 버린다.

법원으로 가는 소송도 모두 노동자성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다툼이 벌어지다가 허망하게 지게 된다. 부당한 해고인지, 업무상재해를 당한 것인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2006년 말 대법원도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판례의 기준을 변경해 노동자임에도 자영업자로 위장돼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보호해야겠다는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조차도 수년 간의 투쟁과 외침이 있었기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학습지교사나 보험모집인·골프장 경기보조원·레미콘 기사 등 대상자가 많은 주요 직종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도 특별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대방인 사용자의 대다수가 재벌들이고 대상 노동자의 수가 많아서 법원이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학습지교사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법의 밖에서 투쟁하며 노조를 지켜 왔다. 자본은 각종 법에 따른 고소·고발과 손해배상청구, 해고를 법의 이름으로 계약자유의 이름으로 하고 있다. 재능교사노조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설립의 첫 관문을 열었던 때로부터 12년이 지났지만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률이 논의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재능교사노조의 투쟁이 1천500일이 넘어가고 있다. 1천500일이면 햇수로도 4년의 세월이다. 투쟁 중인 재능교사노조의 동료들이 복직되는 날 그도 하늘나라에서나마 잠깐 웃을 수 있으리라. 사람이 죽은 뒤에도 더 좋은 세상이 있기를 바라며 그도 그 세상에선 예전처럼 잘 웃고 또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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