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동자는 하나인가. 누가 이렇게 당신에게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것인가.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있는데 뭔 노동자가 하나냐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중 최상위와 최하위 9분위 임금의 격차가 5.4배를 기록하고 있다는데 노동자로 불린다고 같은 노동자이겠냐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임금 격차로 노동자는 갈라져 있기 때문에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다. 당신이 말하는 전제들은 이미 노동자가 하나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당신에겐 당연히 노동자는 하나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내가 당신을 말한다면 당신은 이제 내게 물을 것이다. 나는 뭐라 대답할 것이냐고.

2. 노동자는 하나다. 당신이 뭐라 해도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말한 대로 고용형태, 노동조건에서 노동자는 같지 않다. 그래도 노동자는 하나다. 당신은 말했다. 더 이상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라고. 그러면서 당신은 덧붙일지 모른다. 비정규직을 배려하지 않는 정규직 노동자를 말하고, 비정규직을 받아주지 않는 정규직노조를 말할지 모른다. 나는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는 하나다. 왜냐고. 노동자이니까. 자본 앞에선 모두가 노동자이니까. 자신의 노동을 자본에 복종해서 제공하고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이 아닌 자본이 지급하는 임금으로 생존해야 하는 노동자이니까 노동자는 하나다. 당신은 노동자간 차이를 가지고 노동자를 하나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노동자간 차이를 묻지 않고 자본 앞에 노동자는 하나라고 말했다. 바로 이 점이 당신과 나를 갈랐다. 그러면 당신은 내게 물을 것이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냐고.

3. 그렇다. 나는 바로 당신의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나와 당신, 노동자가 하나인지 아닌지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하나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자본 앞에서 노동자는 다르지 않다는데서 노동자계급의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그렇게 200년을 노동운동은 달려왔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노조와 노동단체로 노동자를 모으고, 노동자정당을 조직하고, 국가권력에 참여하거나 독점했었다. 노동법과 노동자권리, 노동기본권은 바로 노동자는 하나라는 데서 노동운동이 이 세상에 확보해온 것이다. 노동자세상도 노동자가 하나라는 데서 이 세상 노동운동이 꿈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하나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하나일 수 없는 노동자 사이의 차이에서 당신의 운동은 출발하게 된다. 비정규직문제 등 노동자간의 고용형태 극복, 임금격차의 해소가 당신이 가야할 운동의 목표가 된다. 노동자 중 고용형태가 불안정한 비정규직, 불완전 고용의 노동자만 보이고 노동자 일반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최저임금 노동자만 보이고 그보다 몇 배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 중 고용, 노동조건이 최하위의 노동자문제가 당신의 노동문제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정의로운 자가 된다. 당신의 운동은 이 세상에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라고 칭송되고 정의의 운동이 될 것이다. 당신에겐 정규직 노동운동은 정의의 운동이 아니다. 당신에겐 정규직 노동운동은 낡은 노동운동의 유산일 뿐이다. 그러니 당신에겐 극복돼야 할 대상이거나 기껏해야 당신 운동의 지원 대상일 뿐이다. 그 대상, 바로 그 지점에 내가 서 있다. 그 지점에 노동운동이 서 있다. 당신이 말하는 낡은 노동운동의 유산을 부여잡고서. 노동자는 하나라고 말한다. 자본에 맞서 노동자권리, 노동자세상을 위해서 노동자는 하나라고 말한다. 당신이 틀렸다고 말한다.

4. 당신이 열악한 노동자의 문제를 운동의 목표로 설정하는 순간, 낡은 노동운동을 버리고 새롭게 노동자내부의 차별의 문제로 당신의 눈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당신과 함께 할 수많은 친구들이 나타난다. 이 나라에서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기치는 노동자의 정당이 아니라도 친자본의 정당이라도 강령으로 내거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통합당의 의원후보도 비정규직 차별철폐, 갈수록 심해지는 임금격차 해소를 내년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걸고 당신과 당신의 단체의 표를 달라고 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라도 표를 획득할 수 있다면 비정규직문제가 심각하다고 그래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TV토론에 나와서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은 연대하고 통합할 대상이 누군지, 누가 당선가능성이 높고 정책의 실현가능성이 높은지를 고민하면 된다. 지금 이 나라에서 어떠한 정당이라도 비정규직문제, 노동자 격차의 문제를 내걸고 있다. 통합진보당·진보신당·사회당, 그리고 민주통합당까지도. 그리고 한나라당도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 문제 해결을 공약할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가 비정규직, 임금격차 문제로는 세상을 가를 수가 없다. 그렇다. 당신이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라고 하는 순간 이 세상에선 차별철폐의 희망가가 끊임없이 당신의 귀에 들릴 것이다. 왜냐고. 당신이 노동자가 하나가 아니라고 말한 순간 그건 당신이 자본에 대한 노동이라는 개념을 폐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본조차도 당신의 편을 들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서 자신이 낸 세금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이 당신과 같이 그렇다. 내년 정치일정 앞에 노동운동은 이런 것들을 과제로 내걸고 있다. 이런 것들은 노동자 전체를 하나의 대오로 묶지 못한다.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추고 있어 자신의 고용, 노동조건을 확보한 노동자대오를 방관자로 만든다. 그리고선 연대와 지원을 탓하게 된다. 그러니 노동운동은 이런 것들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와 정당과의 연대와 통합에 목을 매고 결국 그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노동운동이 자본에 맞서 노동자일반의 권리 확보를 내걸지 않고 일부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 문제를 내거는 순간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게 되고 노동운동은 자기 자신을 잃고 마는 것이다.

5. 당신이 말한 노동자가 하나가 아닌 세상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자 신승훈은 분신했다. 자본의 현장탄압에 항거해 제 몸에 불을 질렀고 지난 15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은 그의 분노를 자신의 분노라고 눈물로 노동해방열사라며 떠나보내고 있다. 노동자가 하나가 아니라는 당신에게는 그의 분노는 당신의 분노가 아닐 수 있다. 비정규직도 아니고 최저임금보다 몇 배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죽음에 당신은 뭐라 말할 것인가. 이 세상에서 노동자의 숙명인 자본의 현장통제를 받아오다 최근 공장혁신팀을 통해 높은 강도로 가해지자 이 현장탄압에 항거 분신했다고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그의 분신사태를 규정했다. 자본의 현장통제는 이 세상의 작업장에서 사용자가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노동자를 사용자에 복종시키는 걸 말한다. 노동자는 누구나 자본의 현장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의 분노는 자본에 맞선 노동자로서의 분노였다. 그래서 그의 분노는 노동자 일반의 분노일 수밖에 없다. 그의 영정 앞에서 노동자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나라 노동운동은 그의 분노에 응답하고 있지 않다. 자본의 현장통제가 이루어지는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숨쉴 수 있는 자유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지금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나라 노동자 일반의 분노를 지금 노동운동의 분노로, 즉 과제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노동자 일반의 분노를 과제로 노동자를 조직해서 주장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노동자 일반의 권리 확보를 위해서 달려갈 수가 없다. 노동운동이 노동자 자신의 권리 확보를 위해서 전개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를 노동운동의 대오로 강력히 묶어둘 수가 없다. 결국 노동운동은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래도 노동운동이라 해대고 그 단체가 존재한다면 그건 이미 대표 자신의 운동으로 전락한 운동의 잔재일 것이다. 거기서는 권력을 향한 대표의 의지가 노동자의 의지인냥 말해질 뿐이다. 거기서는 대표가 눈물을 흘려도 노동자의 분노 때문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조문하는 자가 모두 망자의 유지를 받드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 나라 노동자는 노동자 신승훈의 분노에 함께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 나라 노동운동이 열사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다. 그래야 노동운동으로 비정규직문제도 임금격차 해소도 온갖 노동자내부의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 노동자는 하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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