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람 기자
“8년 전 절친했던 직장동료가 타이어 검사를 하다 죽었어요. 이 죽음을 계기로 한국타이어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직감하게 됐습니다. 의심을 갖고 지켜보니 잘못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더군요. 그렇게 바로잡아야 할 것들과 싸우다 보니 결국 제 일자리까지 걸고 싸우고 있네요.”

지난 93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 입사한 정승기(50·사진)씨는 모범사원이었다. 10년 이상 타이어 검수업무를 할 정도로 일솜씨도 좋았다. 회사는 정씨에게 수차례 표창장을 주며 화답했다.

그랬던 그가 한순간 ‘싸움닭’으로 변했다. 사측과 물고 물리는 싸움 끝에 그는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역삼동 한국타이어 본사 앞에서 피켓을 두르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그를 만났다.

모범사원, 싸움닭으로 변하다

2004년 4월28일. 여느 날처럼 타이어 검수작업에 몰두해 있던 정씨의 귀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살 터울로 친구처럼 지내던 소아무개(40)씨가 일하다 죽었다는 것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현장으로 달려간 정씨는 그날 본 끔찍했던 광경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겨우 마음을 추스릴 무렵 공장 관리자가 나타났다. 그는 급하게 시신을 수습한 뒤 “하던 일을 계속 하라”며 정씨와 주위 동료들을 다그쳤다. 며칠 후 소씨의 상가에 노동자들이 모였다. 정씨는 죽은 친구를 기리는 ‘근조리본’을 달자고 제안했다.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공장 관리자는 동료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첫날 그들의 가슴에서 일제히 검은색 리본을 떼라고 강요했다.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도 공장 가동을 걱정하고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한다는 이유로 추모조차 못하게 하는 회사를 보고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누군가는 '죽음의 행렬' 멈추게 해야

노동자들은 계속 죽어 나갔다. 서씨의 사건 이듬해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더니 2006년 한 해 동안 무려 7명의 노동자가 가족 곁을 떠났다. 정씨는 여러 자료를 뒤지다 96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타이어에서 9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뭔가가 공장에 숨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나서 이러한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날 이후 정씨는 노동자들의 사망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유족들을 만나고 관련자료를 모조리 수집했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눈으로 살펴보고, 동종업계를 방문해 이를 비교해 봤다.

“회사는 그동안 고무 융해·접합에 쓰이는 한솔(솔벤트)이 무해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발암물질인 벤젠이 섞여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밤샘 교대근무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투입되는 과다한 교대근무가 아무런 제약 없이 이뤄지고 있었어요.”

정씨는 2007년 8월 그동안 수집했던 자료들을 지역일간지에 넘겼다. 기사는 대서특필됐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공중파 유력 시사프로그램이 앞 다퉈 정씨를 찾았다. 결국 이듬해 5월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그 결과 154건의 산업재해 은폐를 비롯해 무려 1천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연이은 부당해고 판정

노동부의 특별감독이 끝날 무렵 정씨는 입사 후 15년 동안 몸담았던 생산공장을 떠나야 했다. 회사는 언론보도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정씨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이어 그를 공장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물류센터로 전보하기로 결정했다.

정씨는 물류센터에서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해 칼을 들고 달려드는 전직 관리자로부터 “노동운동을 계속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그해 8월 있었던 가벼운 해프닝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리점 사장이 트럭을 몰고 물류센터를 방문해 유독 멀리 떨어져 있는 정씨에게 타이어 상차를 요구한 것이다. 정씨가 이에 가벼운 농담을 하자 이를 전해들은 회사는 이 사건을 업무지시 불이행으로 몰아갔다. 결국 회사는 2010년 3월27일자로 징계면직 처리했다.

정씨는 “옳은 일을 하다 그리 된 것이고 다시 복직하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의외로 담담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정씨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도 같은 판정으로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사측은 이행강제금까지 물어 가며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사람을 살리고자 한 일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끝까지 싸우면 좋은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한국타이어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 아닙니까. 언제까지 모른 척할수는 없을 겁니다. 어서 빨리 회사로 돌아가 민주노조 설립의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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