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공무원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뇌출혈·심장마비와 같은 급성질환으로 숨진 이도 많다. 새해 초인 지난 11일 한 법원공무원이 밧줄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다.

15일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본부장 전호일)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이나 급성질환·지병 등으로 사망한 법원공무원은 12명에 이른다. 올 들어서도 자살과 심장마비로 두 명의 법원공무원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자살이 6명, 급성질환·지병으로 목숨을 잃은 이가 8명이었다.

이상원 법원본부 교육선전국장(본부 서울중앙지법지부장)은 "5급 이하 법원공무원이 1만3천여명인데,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1천명당 1명꼴로 목숨을 잃은 셈"이라며 "지난해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법원공무원 사망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해 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법원종사자 업무환경과 건강실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자살충동과 우울증 정도가 매우 심각했다.



법원공무원 30%가 우울증, 국민 평균의 두 배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지난해 10월 말부터 한 달에 걸쳐 5급 이하 전체 법원공무원 중 4분의 1가량인 3천3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설문 응답자들의 평균 나이는 38.3세였고, 평균 근속연수는 11.4년이었다.

고도 우울(12.1%) 혹은 중등도 우울(17.0%) 증상을 보인 공무원이 29.1%에 달했다.<표1 참조> 중등도 우울 이상은 증상 완화를 위해 심리상담사와의 면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다. 연구소가 같은 조사방식을 적용해 지난해 실시했던 사무금융 노동자(중등도 이상 26.5%)나 서비스 노동자(26.6%)보다 높았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조사에서는 중등도 이상 우울증상을 보인 사람은 15.2%에 불과했다.

우울증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보니 자살충동을 느낀 이도 많았다. 최근 1년 새 자살충동을 경험한 법원공무원은 조사대상의 4분의 1인 22.9%였다.<표2 참조> 일반 국민(2009년 조사 16.4%)보다 6.5%나 높았다. 응답자 중 30명은 자살시도까지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실제 자살한 법원공무원도 6명이었다.



우울증·자살충동 “업무 연관성 높아”



법원공무원들은 왜 우울증 정도가 심하고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걸까. 설문조사 결과만을 놓고 보면 자살충동을 경험했던 법원공무원 중 66%는 '가족이나 개인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23%만이 '직장 내 문제'로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답했다. '둘 다 원인'이라는 응답은 11%였다. '둘 다 원인이다'는 응답을 포함해 직장 문제와 관련돼 자살충동을 느꼈다는 법원공무원은 34%였다.

그러나 법원본부와 이 조사를 진행했던 연구소는 설문조사 결과만으로 법원공무원 우울증을 가족이나 개인만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상원 국장은 "현실을 살펴보면 법원공무원은 본 업무와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일상생활 중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이 아닌 직장에서 보내고 있다"며 "가정 문제라 하더라도 업무 스트레스가 가정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고 실생활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워 가정불화가 생기는 등 직장 관련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를 수행한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업무별로 우울증과 자살충동 정도를 비교 분석하면 특정 업무에서 그 정도가 가중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며 "법원공무원의 업무와 우울증·자살충동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국민 접촉업무, 실수 있을까 불안불안



실제 법원 업무 중 등기·파산·신청·민원접수 등 대국민 접촉업무에서 우울증이나 자살충동 정도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 업무 중에서도 형사·행정재판보다는 민사재판부에서 일하는 법원공무원의 스트레스가 심각했다.

법원공무원의 우울정도를 숫자로 표준화한 우울점수 평균은 14.8점이었다. 그러나 등기(15.7점)·파산(15.9점)·신청(15.1점)과 민원접수(15.2점) 등 대국민 접촉업무는 평균을 웃돌았다. 사법행정(12.8점)이나 특허(9.6점) 업무는 평균보다 낮았다. 재판 업무에서도 민사재판부 법원공무원의 우울점수가 15.4점으로 행정재판부(14.2점)·형사재판부(13.9점)·가사재판부(12.4점)보다 높았다.

특히 △재판장과의 갈등 여부 △현장의 의견수렴 여부(의사소통 여부) △업무상 실수에 대한 불안감 △징계 경험 여부 △일과 생활 양립의 어려움 등 업무와 관련된 문제와 우울증·자살충동 정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 모은 사안에서 일정 이상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임 연구원은 "등기처리 등 대국민 법원업무 중에서는 실수가 있을 경우 국민이 국가나 법원공무원에게 구상권(피해보상요구)까지 행사할 수 있어 업무 혹은 업무실수(우려)에 따른 스트레스가 과중할 수밖에 없다"며 "대국민 접촉업무에서 우울증이나 자살충동률이 높은 것은 이러한 법원의 조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법원공무원들은 설문조사에서 법원이 최근 업무구조 변화를 위한 각종 제도를 개편하면서 담당 업무자 혹은 전체 종사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게다가 업무는 3년 전에 비해 약 1.5배가량 늘어난 상태다.

한 연구원은 “제도 개편을 하면서 의사소통을 하지 않은 데다 업무까지 늘면서 최근 3년 새 법원공무원들의 스트레스가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며 “노사협의회와 같은 대화체를 구성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제도 시행 결과를 평가하는 등 법원과 종사원 간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를 통해 개선책을 마련해 나간다면 자살이나 돌연사 같은 문제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자기사] 1인 등기관제, 업무 강도·스트레스 높여



법원 행정처는 지난해 9월 서울시 내 일부 등기소를 통·폐합하고 광역등기국을 개국하면서 1인 등기관제를 도입했다. 업무 전자·자동화가 이뤄지면서 그동안 2명이 하던 등기업무를 1명이 하도록 조정한 것이다.

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줄곧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부동산 등 등기업무에서는 오기와 같은 단순 실수도 국민의 재산권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산손해를 입은 국민은 국가를 상대로 일종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인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피해가 드러날 경우 그 업무를 수행했던 법원공무원(등기관)이 피해를 보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연히 업무 스트레스나 실수에 대한 불안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사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연구소가 등기업무를 수행하는 법원공무원 220명을 조사한 결과 1인 등기업무를 수행하는 법원공무원들의 스트레스(직무요구 기준)는 59.3점으로 2인 등기관제(53.2점)보다 높았다. 관계갈등 스트레스는 혼자 일하는 1인 등기관제(42.2점)가 2인 등기관제(45.6점)보다 낮았고, 직무불안 정도는 비슷(1인 51.0점·2인 51.6점)했다.

반면 우울증 정도는 혼자 등기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13.6점으로, 두 명에서 업무를 보는 공무원(16.8점)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인 등기관제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우울증이 실제 높다기보다는 등기관 업무 자체가 우울증이 높은 집단인 데다, 아직까지는 1인 등기관제로 일하는 법원공무원(17명)이 2인 등기관제로 일하는 이들(203명)보다 적은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우발하는 업무 불안감의 사전 척도가 될 수 있는 '업무 실수로 인한 징계 경험 여부'에서도 1인 등기관제(11.8%)보다는 2인 등기관제(19.8%)에서 높았다는 것에서 이러한 현상을 추정할 수 있다.

노동조건은 혼자 일하는 1인 등기관제가 나쁠 수밖에 없다. 1인 등기관제 법원공무원의 31.3%가 "아팠을 때도 일이 너무 많이 병가를 쓸 수 없었다"고 답한 반면 2인 등기관제 법원공무원은 21.3%만 같은 대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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