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정치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20세기 개막과 동시에 영국의 노동당은 계급정치를 열었다. 자유당과 선거연대를 통해 소수의 의원을 의회에 진출시켰던 노동당은 양차 세계대전 전후로 독자적인 집권이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초창기 자유당을 통한 의회전략에 치중했던 노동계도 노동지분을 전제로 노동당에 대한 전폭적 지지로 화답했다. 하지만 영국의 노동당은 세기 말 계급정치를 버렸다. 노동당 당수인 블레어 수상이 제3의 길을 외치면서 계급정치와 결별했기 때문이다. 비단 이런 현상은 영국의 예만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면서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 대부분이 블레어 수상과 비슷한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 이상 투기자본이 판치는 금융 중심의 세계화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몰락과 더불어 블레어 수상의 제3의 길 노선마저 파산선고를 맞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땅에 떨어졌던 계급정치의 깃발이 다시 휘날리고 있다. 노조와 당이 연대해 올렸던 20세기의 계급정치의 깃발은 아니었다. 미국 월가의 점령시위, 한국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와 같이 대중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온몸으로 항거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계급정치의 흐름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것도 아래로부터 대중의 직접행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계급정치다. 이것이 위기에 빠진 정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계급정치’를 거론했다. 이 위원장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는 지역정치를 넘어 계급정치가 시작되는 해”라고 신년사에서 선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노총은 초유의 정치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민주통합당의 창당 주체로 참여했고, 15일 실시되는 지도부 선출에 참여한다. 앞서 민주통합당은 창당과정에서 확정한 당헌과 당규에 노동존중의 가치를 명시했다. 나아가 한국노총은 대규모 선거인단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노총이 집권 가능한 정당에 대한 지지를 넘어 정당의 창당과 지도부 선출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되돌아보면 한국노총의 정치참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노총은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와 정책연합을 했고,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다. 200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체결하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두 번의 정책연합을 통해 지지했던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한국노총의 정치적 영향력도 높아졌다. 하지만 두 번의 정치실험은 연대했던 정당과 결별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정당의 창당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은 한국노총의 녹색사민당 창당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노총의 조직적 지원에도 녹색사민당은 2004년 총선에서 0.5%(10만4천129표)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한국노총은 녹색사민당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용득 위원장의 언급처럼 한국노총식 계급정치의 실험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정당 지지를 통한 소수의 국회의원 진출이나 독자창당 방식과 다르다는 얘기다. 당 내 세력에서 노동지분 획득, 강령·당헌·당규에 노동존중 가치 포함, 노동위원회의 위상 강화 등이 민주통합당 창당과정에서 관철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참여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용득 위원장은 여당인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에 대해 비판적인 조합원의 지지를 얻었다. 이를 고려할 때 야권 통합에 참여하고, 노동 없는 정당구조를 바꾸는 것은 시대적 과제였다.

계급정치가 당과 노조의 결합이라는 과거의 명제를 재현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노총의 모습은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지도부 선거에 나선 민주통합당 후보들에 대해 노동자들이 변별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노총은 자체로 모집한 선거인단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정책질의서를 보냈지만 후보들의 답변서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답변서가 변별력을 잃었다면 한국노총이 주최하는 후보 간 노동정책 토론회를 개최하는 방법도 고려해 봄직한데 이마저도 계획되지 못했다.

한국노총은 지지후보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그간 총선과 대선에서 지지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혀 왔고, 계급정치를 표방한 한국노총이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는 것은 의아한 대목이다. 진정 정치의 주체가 돼야 하는 것은 조합원이며, 이들이 직접 참여해 정당의 변화를 만드는 과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정치공학만 있고 대중운동은 없는 계급정치로선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없다. 최상급단체라면 현안에 짓눌려 있는 노동조합에게 방향을 알리고, 일련의 대중운동 프로그램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실험도 성공할 수 있고, 계급정치도 흘러간 옛 노래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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