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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은 '생존'의 문제다
김은성

매일노동뉴스기자

지난해 11월 근로복지공단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공장에서 성희롱 피해를 겪은 박아무개씨에 대해 산업재해를 승인하는 판정을 내렸다. 박씨는 1년4개월간의 지난한 복직투쟁을 벌인 끝에 현대차 계열의 한 물류업체로 복직을 앞두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에 따른 우울증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한 최초의 사례로 사용자의 성희롱 방지노력을 법적으로 의무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간 직장 내 성희롱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발생하는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로 치부돼 왔다. 하지만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직장 내 성희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에 따르면 성희롱 상담이 전체의 40.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고용이 불안할수록 성희롱 경험은 더 많다. 민주노총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지난해 8월 여성노동자 1천652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정규직(3.11개)보다 비정규직(3.76개)이 더 많은 성희롱을 당했다. 간접고용일 때 4.02개로 직접고용(3.13개)보다 더 많았다.

공감은 "비정규직이고 간접고용일수록 일상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성희롱보다 의도적이고 직접적인 성희롱을 겪어 직장 내 관계에서 더 쉽게 성적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대응했다. 간접적으로만 불쾌감을 표시하거나(39%), 반응하지 않는 방식(30%)으로 대처했다. 이는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고용'과 맞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박씨는 14년 동안 현대차 사내하청 공장에서 일했다. 홀로 아이 셋을 키우는 그에게 일은 유일한 생존수단이었다. 그는 2009년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이 반복되자 이를 동료에게 알렸고, 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회사는 폐업신고를 하고 가해자와 다른 직원들만 고용승계했다. 가해자가 일터에서 일할 동안 박씨는 2차 피해를 비롯한 온갖 수모를 당했다. 현대차측은 “박씨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내용의 문서를 국회에 돌렸다. 또 다른 현대차 관리자들은 "힘들어서 한 농담이 무슨 성희롱이냐", "다른 여성에게는 뽀뽀도 했는데 왜 너만 난리냐"는 말까지 했다. 박씨는 공장 내 다른 피해여성에게 연대를 요청했지만 “참지 그랬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여성노동자에게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희롱을 가벼운 희롱이나 개인의 수치로 여긴다. 생존을 위협하는 직장 내 성희롱을 여성노동자 개인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겨 둬서는 안 된다.

김은성  kes04@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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