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오늘은 법정이 아니라 저희 아파트에서 매일 뵙는 아저씨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바로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 말입니다.

지난해 11월7일 고용노동부는 감시·단속직(감단직)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을 2015년까지 유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감단직 노동자들은 당초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가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받아 2012년 1월1일부터 최저임금 100%가 적용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최저임금제 전면 시행을 불과 2개월 앞두고 "최저임금 100%를 적용하면 인건비 상승으로 대량 해고가 발생한다"면서 다시 3년간 최저임금제 시행을 미뤘습니다. 2011년 기준 최저임금은 시간당 4천320원, 주 40시간 월급으로 환산하면 90만2천880원입니다.

한 달에 90만원도 받을 수 없다는 감단직 노동자는 어떤 분들일까요. 한겨울 새벽녘 키 높이의 눈을 치우고 밤마다 아파트를 순찰하는 경비원, 수위 아저씨(이하 ‘경비노동자’)들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이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2평 남짓 경비실에서 쪽잠을 자는 분들에게 최저임금의 80~90%만 받으라는 것입니다. 경비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유예조치는 국가의 의무를 방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경비노동자가 요구하는 것은 ‘적정임금’이 아니라 ‘최저임금’입니다. 경비노동자는 순찰과 경비라는 본연의 업무 외에도 주차관리·분리수거·쓰레기장 관리·택배 관리·눈 치우기 등 고강도의 업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노동강도에 걸맞은 적정임금은커녕 최저임금조차 아깝다는 정부의 태도는 용납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제는 정부의 시혜가 아니라 헌법과 법령이 정한 국가의 의무입니다. 헌법 제32조제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그 법률인 최저임금법 시행령은 2012년 1월1일부터 경비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 100%를 적용하도록 못 박고 있었습니다. 정부 마음대로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는 선물이 아니라 헌법과 법령이 정한 국가의 의무인 것입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변명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최저임금 때문에 대량해고의 위험이 있다는 것은 경험적·구체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고위험이 높아진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정부가 고용안정기금 확충과 직접 지원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경비노동자에게 떠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최저임금제 시행은 헌법에 정한 국가의 의무입니다. 정부의 판단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 아파트 경비원 뿐이겠습니까. 장애인재활자립장에서 근무하는 장애인 노동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청년·고령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최저임금 결정방식도 문제입니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목적은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이라고 합니다. 또한 최저임금법은 노동자의 생계비, 유사 노동자의 임금, 노동생산성과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최저임금 인상률이 매년 생계비 인상률에도 못 미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생활임금, 생계비 보장과는 무관하게 결정되다 보니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40%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평균임금의 32%(2008년 기준)로 19개 회원국 중 16위입니다. 이것이 OECD 회원이자 G20 의장국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최저임금, 그 최저임금마저도 받지 못하는 수많은 비정규·청년·고령의 노동자들이 있는 우리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로 보기 어렵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도 좋지만, 그 기업을 지탱하고 상품을 구매하는 노동자가 살 수 없다면 기업은커녕 나라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상식과 연대, 그리고 헌법 정신에 기초해 2012년 새해에는 최저임금다운 최저임금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기를, 그래서 우리 아파트 109동 경비원 아저씨가 굽은 허리를 다소나마 펴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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