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공인노무사(성동근로자복지센터)
김성호 공인노무사(성동근로자복지센터)

2011년의 마지막을 이틀 남겨둔 29일 정오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후문 주변. 고층빌딩의 골바람으로 제법 추위가 사나웠다. 사나운 추위의 한가운데 4명의 1인 시위자와 일군의 집회 준비자들이 모여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목소리는 모두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향했다. 역사교과서 개정 문제, 영림중학교 교장 임명과 관련한 문제, 반값등록금 문제, 학교 내 학생 간 폭력문제, 대학 구조조정 문제 등…. 그 사이에 나도 살며시 섰다.

“실습생도 인간이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교과과정에 노동인권교육 즉각 실시하라.”

2011년 11월17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근무하던 ‘노동자’ 김아무개(18세·실업고 3학년)군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 ‘노동자’는 쓰러지기 3개월여 전인 8월부터 근무를 해 왔다. 모대학 자동차학과에 합격해 자동차디자인을 공부할 부푼 꿈을 안고 등록금도 마련하고 사회경험도 쌓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바람에서 시작됐던 현장실습은 그 ‘노동자’에게 뇌출혈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줬다.

언론보도를 보면 김군은 성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월 100시간의 연장근무와 월 90시간의 야간근무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주간근무와 야간근무가 1주일 간격으로 바뀌어 생활 또한 불규칙했다고 한다. 살인적이라는 말 이외의 다른 표현을 찾기 힘들다.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이 ‘노동자’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현장실습은 학생이 산업현장에서 직접 배우고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1960년대에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한창 산업화되고 있던 우리나라에 제조업 인력공급이 부족했던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던 것이 노동력 착취와 노동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제기되며 참여정부 들어 사실상 폐지됐다(2006년 전문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방안). 그러나 이 정상화방안은 2년도 못 가서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편승해 폐지됐고, 더 나아가 정부가 특성화고의 평가를 취업률을 중심으로 하자 일선 학교에서는 무분별하게 학생들을 현장실습으로 내모는 양상이 돼 버렸다.

수백 명이나 되는 현장실습 ‘노동자’를 학교에서는 관리하지 못했다. 오히려 현장실습 ‘노동자’가 힘들다고 돌아오면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고 참으라며 회사로 되돌려 보내기만 했다. 회사에서는 현장실습 ‘노동자’를 협약서를 작성할 때를 제외하고는 학생으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6개월간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비정규 노동자’로 취급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6개월이 지나 이들이 졸업하면 회사는 이들을 채용하지는 않고 이 자리를 전문대 현장실습 ‘노동자’로 채우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또한 이들 현장실습 ‘노동자’가 맡은 일 가운데 성인 ‘노동자’도 회피하는 위험하고 유해한 일이 적지 않았다. 이번 김군의 경우도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 자동차 제조공정에서 성인 ‘노동자’들도 꺼려하는 도장업무를 수행했다. 이 공정은 세 명의 백혈병 환자가 발생한 공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은 제조업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섬유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은 백화점 판매점원으로, 컴퓨터를 전공한 학생은 사무실 사무보조업무자로, 건축을 전공한 학생은 오지의 건설현장에서 장시간 노동과 폭언·인격모독·성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이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원칙적으로 현장실습생을 근로자로 보지 않는다. 현장실습은 ‘교육’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란다. 다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특별하게 신경 써 줘서 재해보상과 관련해 이들을 근로자로 간주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교과부는 취업률을 산정할 때 이들을 포함시킨다고 한다. 한편의 엉성한 개그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정상화방안이 현장실습을 교육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어떠한 정상화방안이 이미 값싼 노동력에 길들여진 자본을 통제할 수 있을까.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답은 아닐까.

그래도 이 제도를 꼭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면 현장실습 투입 전 근로기준법·직업안전·성희롱 예방교육 등은 꼭 시키자. 노동부와 교과부는 책임 있게 대책을 마련하고 지도감독 인력을 늘리자. 산업체는 전담인력을 통해 제대로 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자. 학교는 적정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자. 성인 ‘노동자’는 이들이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배려하자.

혹시 정부가, 산업체가, 학교가 "현장실습 제도는 사실 교육이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고 고백할 용기가 있다면 협약서가 아니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들 현장실습 ‘노동자’의 처우를 성인 ‘노동자’와 차별이 없도록 하자.

아직 의식불명상태인 김아무개 현장실습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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