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날이 추웠고 사람들은 난로 주변을 서성거렸다. 희망텐트촌을 찾아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나무 명패를 자꾸 살폈다. 혹시 떨어질까 자주 고쳤다.

지난 4일 오전 11시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한 동의 천막과 5동의 텐트 주변에 20여명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공장 정문 앞에서는 경비용역업체 직원 대여섯 명이 텐트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노동자와 가족 19명이 숨졌다. 노사는 2009년 8월6일 파업참가자 중 52%는 1년 무급휴직 뒤 복직한다는 타협안에 합의했다. 그로부터 2년6개월이 지났고, 아까운 목숨들이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마지막 선택을 했다. 공장 앞에 텐트를 치고 기약 없는 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지난달 7일 공장 앞에 천막 1동과 텐트 5동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희망텐트촌'이라고 불렀다.

25명의 촌민이 사는 희망텐트촌

희망텐트촌에는 해고자 25명이 상주한다. 이들은 출근 선전전으로 하루를 연다.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유인물을 나눠 주고, 회의를 하고…. 오전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러자 텐트에 일부만 남고 나머지 해고자들은 텐트촌 오른편의 지부사무실로 향했다.

평택공장 앞 상가A동 104호. 이곳은 세 끼 밥을 해 먹고, 회의도 하는 쌍용차 투쟁의 거점이다. 김득중 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예전에 식당을 했던 곳이라 밥을 먹기에는 제격”이라고 말했다. 입구엔 ‘쌍용 식당’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식사 메뉴는 된장찌개와 김치, 그리고 마른반찬 두어 개.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 긴 상 세 개를 펼치니 공간이 가득 찼다.

“희망버스 탔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해고자들 틈에 한눈에 봐도 앳된 학생이 눈에 띄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희망텐트촌에 연대하러 온 고등학생이었다. 서울디자인고에 다니는 최기석(17)군은 “지난해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도 알게 됐다”며 “(정리해고에 대해) 잘못 생각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최군은 “여기에 있는 아저씨들이 좋아서 가끔 온다”고 했다.

해고자들은 최군처럼 희망텐트촌을 찾아오는 외부인들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라고 했다. 연대하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일과를 끝내고 공장 앞으로 모인다. 적게는 몇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이다. 함께 선전전을 하고, 촛불집회를 연다.

해고자들이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이들과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새벽 1시가 훌쩍 넘어간다. 그리고 텐트에서 취침한다. 그들은 아침선전전까지 참여하고 나서야 각자 출근길에 오른다. 김정우 지부장은 “매일 투쟁을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버티지를 못한다”며 “연대하시는 분들이 술보다는 몸에 약이 되는 음식을 가지고 와 함께 먹으며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웃었다.

“공장으로 돌아가는 게 소원”

희망텐트촌 입구에는 입주한 촌민들의 나무 문패가 한곳에 걸려 있었다. 문패에는 이름과 함께 희망의 메시지 50여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요구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죽음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회사가 책임을 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해고자 전원이 복직하는 겁니다.”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의 말이다.

해고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에는 생계를 책임졌던 가장들이다. 때문에 가장 걱정되는 것 또한 경제적인 문제다. 해고자들이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길은 ‘후원회비’와 ‘대리운전비’뿐이다.

지부는 재정사업을 위해 지난해 7월 대리운전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1577-6406. 이 번호로 전화해 대리운전을 이용하면 수익금의 15%가 투쟁기금으로 적립된다. 물론 후원회비와 대리운전비 수수료는 생계를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김 지부장은 “간부들은 명함 뒤에 대리운전 번호를 인쇄해 들고 다닌다”며 “당분간 희망텐트촌 투쟁에 집중하고 다음달께 재정사업 확대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달 13일에는 ‘쌍용차 희망텐트촌 2차 포위작전’ 행사가 예정돼 있다. 전국에서 3천여명 정도가 모일 예정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는 희망버스의 영향으로 일단락됐다. 쌍용차 희망텐트촌에는 어떤 희망이 배달될까. 노동계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겨울방학이니까 앞으로도 자주 내려올 것”이라는 고등학생 최군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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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와락’ 활동가 이정아씨

“정리해고로 입은 상처, 와락에서 치유하세요”

‘와락’ 센터는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벌어진 대량해고와 파업, 진압 과정에서 심리적 상처를 입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의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다. 해고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과 쌍용차 가족들이 힘을 모아 지난해 10월30일 문을 열었다.

이달 4일 평택시 통복동 ‘와락’에서 상근하는 이정아(39·사진)씨를 만났다. 그는 파업 당시 쌍용차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로 활동했다.

'와락'에는 평일에 10여명의 아이들이 와서 넓은 공간에서 뛰어논다. 토요일엔 30~40명의 아이들이 공간을 채운다. 엄마·아빠가 돌봐줄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와락의 한 주는 바쁘게 돌아간다. 월요일엔 어른 개인상담이 있다. 화요일엔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놀이치료를 한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해 심리상태를 알아보고 부모와 상담을 한다. 실험과학·피아노·북아트·댄스 등의 강연이 평일에 채워진다. 이정아씨는 “특강을 하는 선생님들은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수업을 한다”고 말했다.

토요일은 정혜신 박사의 집단 심리치료가 있다. 토요일에 ‘와락’이 가장 붐비는 이유다. 지난주 3기 치료가 끝났고, 설 이후 4기 심리치료가 시작된다. 한 기수마다 8주간 진행된다.

와락 상근자는 4명인데, 모두 쌍용차 해고자들의 부인이다. 이들 모두 집단 심리치료를 받았다. 이씨는 심리치료의 효과를 톡톡히 본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정혜신 박사의 집단 심리치료를 받지 않았으면 지금 와락을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느 날은 자책하다가도 어느 날은 남 탓만 하고, 자책과 원망으로 가득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치료를 받은 후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이씨는 “내 잘못이 아니었고 우리는 끝까지 함께했고 옳은 싸움을 했다는 생각이 굳어졌다”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치료기간 동안 77일간의 파업과 그 후 힘들었던 기억을 끄집어 내 기억과 마주하게 했어요. 치료 과정은 힘들었지만 정혜신 박사님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씨는 “파업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이 집에 숨어 있지만 말고 밖으로 나와 함께 치유하고 공동체를 꾸려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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