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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장시간 노동 개선인가

장시간 노동 개선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다. 고용노동부가 완성차 업체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장시간 노동 개선을 요구하는 핵심 이유다. 고용 관련 성적이 좋지 않은 현 정권이 집권 말년에 빠르게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완성차 공장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안전이다. 지난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에서 밤에는 잠 좀 자자며 파업을 벌인 이유이며, 완성차 노조에서 십여 년에 걸쳐 주간연속 2교대제를 주장하는 이유다. 국제암기구는 2007년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제 자체가 발암성 물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비호 아래 현대·기아차가 밝힌 장시간 노동 개선계획은 고용창출도, 노동안전도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4일 2013년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생산직 1천400명(현대차 900명·기아차 500명) 신규 채용, 노후설비 교체 3천599억원 투자, 일부 공정의 3조3교대제 변경 등을 골자로 하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게 찬찬히 살펴보면 모두 꼼수로만 채워진 계획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먼저 노동안전을 보자. 야간노동이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현대·기아차의 계획은 일보 전진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보전진 뒤에 이보후퇴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현대·기아차가 밝힌 투자계획은 설비를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라인 속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돼 있는데, 이미 수년간의 노동강도 상승에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부딪혀 있는 노동자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기아차가 지난해 말에 발표한 광주공장 생산계획은 현대·기아차의 공장 재편계획을 가늠하게 해 준다. 기아차는 스포티지R과 쏘울을 생산하는 광주2공장의 시간당 생산대수를 42에서 66으로 57% 상승시킬 계획이다. 2009년에 시간당 생산대수가 35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강화다.

이런 식이면 노동자가 지출하는 노동의 총량, 기계에 빗대어 말하자면 노동자 육체의 마모가 시간단축에도 결코 줄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 감소량보다 노동 강도가 더 상승한다. 라인속도 상승에 따라 육체적 강도만이 아니라 불량을 내지 않기 위한 정신적 몰입도도 훨씬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대·기아차의 계획은 차종별 물량 변화에 따라 전환배치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물론 한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도 더 늘린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순간순간 바뀌는 차종으로 인해 유무형의 노동강도 상승을 겪는다. 절대적 노동시간은 줄지만 우리 육체가 경험하는 노동시간은 늘어난다. 150년 전 마르크스는 자본이 발전할수록 노동시간을 절대적으로 늘리기보다 상대적(노동강도 상승)으로 늘려 나간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본의 전략은 다르지 않다.

다음으로 고용을 보자. 현대·기아차는 1천4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했지만 불법파견 상태인 1만명이 넘는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없다. 심지어 신규 채용의 많은 부분은 개악된 교대제 시스템인 파워트레인 부문의 3조3교대 개편으로 발생한다. 현대·기아차는 10년 가까이 응당 직접 고용했어야 할 1만명 넘는 노동자를 직고용하지 않았다. 1천400명의 신규 채용이 아니라 1만명에 대한 미채용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파워트레인 공장을 2조2교대제에서 3조3교대제로 바꾸는 것은 여러 점에서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하는 야간노동을 아예 제도화하는 것과 더불어 사측의 의도에 따라 밤에만 일하는 야간상시조를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3조3교대제는 어떤 경우에도 올빼미 노동자를 통해 신규 공장 증설 없이 가동률만 높이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한편 국민경제 차원에서 보면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증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단축의 반대급부로 생산성 증가를 유도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 경제학자 뒤메닐은 유럽이 미국보다 더 실업률 증가에 고통 받은 이유를 유럽 기업들의 급격한 생산성 증가에서 찾기도 한다. 70년대 이후 유럽 기업들이 미국 기업 따라잡기를 하면서 미국보다 더 큰 생산성 상승을 기록했고, 그 결과 국민경제 전체가 고실업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생산성 증가와 고실업, 내수 경제 침체의 악순환이 80년대 이후 유럽 경제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유럽경제가 2~3% 내외의 생산성 증가만 포기했어도 유럽은 훨씬 나은 경제 상황에 있었을 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프랑스·독일 등은 노동시간을 크게 단축했지만 사실상 고용증가는 거의 없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대·기아차 식의 엄청난 생산성 증가를 전제한 노동시간 단축 계획으로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고용이 늘지 않는다.

현재 고용노동부와 재벌이 이야기하는 장시간 노동 개선계획은 노동안전에서도, 고용창출에서도 그다지 효과가 없어 보인다. 아니 한 걸음 나아가는 척하면서 오히려 두 걸음 뒤로 되돌아가는 계획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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