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침체되면 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체불임금이 늘면서 생계곤란을 겪는 노동자들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경기침체의 지표로 임금체불 증감여부를 꼽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올해 우리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오는 상황에서 체불임금 증가속도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11월 기준 25만명의 노동자가 총 9천496억원의 체불임금을 노동관서에 신고했다. 최근 3년 동안 임금체불은 1조원 대에 머물면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자칫 체불임금이 1조3천500억원까지 치솟았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연일 겨울날씨는 강추위를 기록하고 있는데다 올해 설 명절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러다간 임금이 체불돼 고향에 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속출할 수 있다. 설 명절에 제수 상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무부처인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체불임금 문제를 거론했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체불사업주 처벌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노동부는 체불사업주 명단 공포, 금융·신용상 제재방안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이 사실을 알리면서 “기업주들이 금융권에 돈 갚는 것은 부담을 느끼면서 임금은 떼먹고,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20만명의 체불사업주 가운데 법정구속은 13명에 그쳤다”며 사법부에도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주무부처로서 제도를 개선했으니 법적 제재를 담당하는 사법부도 이 문제에 엄정히 처리해달라고 주문한 셈이다. 노동부가 악성 체불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하지만 체불을 당한 노동자가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악성 체불사업장은 폐업을 했거나 사실상 도산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노동자들은 임금채권보장기금법에 따라 최종 3개월 임금과 3년의 퇴직금 중 일부를 지급받을 수 있다. 이를 ‘체당금’이라고 한다. 단, 피해 노동자가 다녔던 기업이 폐업 또는 사실상 도산상태라는 것을 입증해야만 한다.

일선 노동관서의 근로감독관은 기업의 사실상 도산 상태임을 최종적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근로감독관은 이 과정을 노동자 스스로 하기 보다는 공인노무사들이 대행해 주는 것을 유도한다. 폐업 또는 사실상 도산을 확인하는 절차는 복잡하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아 노동자 스스로가 하기에는 어려운 탓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체불노동자가 돈을 들여 공인노무사를 통해 체당금 수급절차를 밟았다면 처리기간이라도 빨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공인노무사들에 따르면 체불을 당한 노동자가 노동관서에 진정을 내 체불을 확인하는 기간만 평균 2개월 정도 걸린다. 공인노무사가 이를 대행을 한다하더라도 기업의 폐업 또는 사실상 도산여부까지 걸리는 기간은 보통 6개월 이상이다. 공인노무사들이 조력한다고 하더라도 6개월 이상 걸리는 형편이니 생계곤란을 겪고 있는 체불노동자에겐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체당금 지급절차를 엄격하게 하더라도 사업주가 위장폐업을 해 체당금을 부정수급하는 사례도 있다. 복잡한 절차 탓에 체불노동자가 울고, 제도의 허점을 노려 부정수급하는 사례가 있다면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체당금 지급절차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대안일 것이다. 사업주가 도산을 했을 경우에만 체당금을 지급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하자는 얘기다. 체당금은 세금이 아니다. 체당금은 산재보험에 가입한 사업주들로부터 노동자들의 임금 0.03%를 걷어 재원이 조성된다. 형식적으론 사업주들이 내지만 실질적으론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떼어 모은 기금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체불된 노동자들이 체당금을 지급받는 절차가 복잡하고 처리기간이 길 이유가 없다. 경제가 침체되고 체불임금이 1조원 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면 체당금의 활용도를 높여 악성 체불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임금채권보장기금이 적정선에서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을 찾아보자는 얘기다.

물론 체당금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노동부의 입장을 무조건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노동부가 발표한 대로 국선노무사나 변호사가 체불노동자를 조력하는 방안은 정공법은 아닐 것이다. 대행 수수료를 면제받는다 하더라도 까다롭고 처리기간도 긴 체당금 수급조건을 개선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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