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경기도 양주시에는 택시 사업장이 양주상운과 한영택시, 딱 두 곳이다. 그런데 사실상 한 개의 사업장이나 마찬가지다. 사업주가 같기 때문이다. 양주상운은 지난 2007년 당시 덕흥택시를 인수해 한영택시로 이름을 바꿨다.

한영택시에는 민주택시노조 한영택시분회(분회장 오호환)가 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복수노조인 기업별노조가 설립됐다. 상조회 회원들이 주축이 됐다. 사용자는 기업별노조에 사무실을 내주고 현판식에도 참석했다. 반면 민주노총 소속 분회는 ‘기존 노조’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사무실도 없고 현판도 없다.

양주시 지역 택시노동자들은 ‘콜’로 먹고산다. 주택가가 띄엄띄엄 형성돼 있는 까닭이다. 손님이 회사로 배차요청을 하면 회사에서 기사에게 연락해 준다. 회사측은 알게 모르게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차별했다. 주로 콜을 안 주거나 낡은 차를 배차하는 방식을 썼다. 택시회사에서 새 차는 오래 근무한 사람이 순서대로 받는 것이 관례다.

낡은 차인지 새 차인지 여부는 운전 노동자의 근무환경과 수입으로 직결된다. 이 회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차별은 2007년 5월에 시작됐다. 양주상운이 인수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오호환 분회장은 “양주지역은 개인택시들도 100% 콜로 운영할 만큼 콜이 생명”이라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는 콜을 주지 않아 ‘미안하다’며 어쩔 수 없이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이 많다”고 말했다. 2007년 50여명이었던 조합원은 이제 7명 남았다. 최근 4년 동안 조합원 5명이 해고됐다가 복직하길 반복했다. 오호환 분회장은 택시업계의 복수노조와 관련해 “상조회가 합법화돼 간판을 단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상조회가 새 노조로 이름만 바꿔”

회사측이 상조회를 지원해 새 노조를 만들게 하고 기존 노조를 압박하는 일은 한국노총 사업장에서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ㅇ운수에는 지난해 3월 복수노조가 생겼다. 기존 노조인 전택노련 ㅇ운수분회가 산별노조였기 때문에 기업별노조 설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상조회로 시작한 새 노조는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다.

회사측은 상조회 회원들에게는 혜택을 주고 기존 노조를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배차부터 근무조정과 연월차·비번까지 기존 조합원이 신청하면 받아 주지 않았고, 사고가 나면 기존 조합원들은 징계하고 새 노조 조합원은 적당히 눈을 감아주는 식이었다. 특히 회사측은 신규직원이 들어오면 기존 노조 대신 새 노조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조합원이 80~90명에 달했던 기존 노조 ㅇ분회는 최근 조합원이 10여명까지 줄었다. 반면 새 노조는 조합원이 80여명으로 늘었다.

회사, 새 노조에 혜택 몰아주기

ㅇ분회는 순식간에 과반수노조 지위를 잃었다. 과반수노조 지위를 획득한 새 노조는 회사측과 임금협약을 체결했지만 어떤 내용으로 체결됐는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급기야 회사측은 기존 노조에게 노조 사무실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노노갈등을 부추겼다. 노조 사무실이 없던 새 노조는 회사 관리자 사무실을 이용했다. “노동자들끼리 싸우는 것은 안 된다”고 판단한 ㅇ분회는 결국 새 노조에 사무실 일부 공간을 내줬다.

민주택시노조 한영택시분회 역시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기 전인 지난해 6월30일까지 회사측과 교섭을 하다 7월1일 이후 교섭을 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측에서 “기업별노조와 창구를 단일화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분회는 지난해 10월 사용자를 상대로 의정부지법에 단체교섭응낙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양주시처럼 사실상 택시 사업장이 한 곳인 경우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권리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택시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일반택시회사에서 일정 근무연수를 채워야 하는데, 사업주 눈 밖에 나면 큰일이다. 오호환 분회장은 “개인택시를 바라보는 40~50대 중년들의 소망을 약점 잡아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다”며 “요즘 같은 시대에 택시를 운전할 정도면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인데 민주노총에 들어올 생각을 아예 못한다”고 말했다.

창구단일화에 막혀 버린 교섭권

그렇다면 왜 택시 사업장에서 유독 ‘사용자 지원노조’가 많이 생기는 것일까. 택시업계에 따르면 2010년 7월부터 택시사업장에도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택시 사용자들이 노조를 꺼리는 데는 최저임금제도 적용도 한몫했다. 전택노련 소속 수원지역 분회들은 지난해 택시회사들과 공동으로 임금교섭을 벌였다. 교섭 과정에서 모든 회사의 이해관계를 맞출 수는 없었다. 회사마다 경영상태가 달랐기 때문이다. 사고가 많아 보험수가가 높거나 택시 가동률이 떨어지는 회사는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기도 수원의 ㅇ운수는 “회사 운영이 어렵다”며 분회에 별도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산별노조였기 때문에 분회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얼마 안 가 상조회가 만들어졌다.

민주택시노조 소속 분회들은 다양한 이유로 사용주의 ‘경계대상’이 됐다. 택시업계의 근로형태와 임금제도는 복잡하다. 일정 금액의 사납금을 회사에 주고 나머지 수익을 기사가 갖는 사납금제부터 운행수익을 모두 회사에 주고 일정 금액을 월급으로 지급받는 전액관리제 등이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전액관리제를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를 상대로 최저임금을 지급하라는 요구도 한다. 민주택시노조 소속 조합원은 2003~2004년 3만여명에서 1만5천여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 시행 이후 조합원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만 전국적으로 30여개의 분회가 민주택시노조에 가입했고, 최근까지 조합원이 1천여명 늘었다.<상자기사 참조>

개별근로조건 다양해 노동계 집단대응 어려워

노동계가 사용자들의 이른바 ‘복수노조 와해전략’에 속수무책인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조합원에게 배차나 연·월차 등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에 어떤 차량을 배차해주느냐 여부는 택시노동자의 하루 수입과 직결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하루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미수금으로 잡아 월급에서 공제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동자를 관리·압박하는 반면 노동자는 사용자를 압박할 수단이 많지 않다.

지난해 7월 복수노조 허용을 전후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계약직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들은 처음에는 예비기사로 채용된다. 정규기사가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고정차량을 배차받지 못하고 운행되지 않는 예비차량을 운행하다 보통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정규기사가 된다. 최근에는 운전기사가 부족해 예비기사를 거치지 않고 고정배차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복수노조 허용을 전후해 택시 사업장에 1년 단위의 계약직 근로계약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조아무개 민주택시노조 ㅎ운수분회장은 “2010년 10월부터 나이가 많든 적든 들어오는 사람들은 전부 계약직으로 받기 시작했다”며 “우리한테 들어오고 싶어도 계약 문제가 있기 때문에 못 들어온다”고 말했다.

부당노동행위 해도 "배 째라"

노동계로부터 '부당노동행위 백화점'으로 불리는 택시업계. 그러나 택시 사업주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와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기도 수원의 ㅊ운수는 지난해 7월 새 노조가 생긴 후 기존 노조 전임자임금과 복리후생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사용자는 복리후생비 사용내역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기존 노조는 “지배·개입”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ㅊ운수에서도 기존 노조인 전택노련 ㅊ운수분회가 조합원 감소(70여명→30여명)로 과반수노조 지위를 잃었다. 사용자는 지난달 27일 임금 미지급에 따른 근로기준법 위반과 복리후생비 미지급에 따른 단체협약 위반으로 각각 1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지만 여전히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부당노동행위의 경우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어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당사자들도 피해를 우려해 증언을 거부하기 일쑤다. 이승기 전택노련 경기지역본부 사무국장은 “경기도 수원의 o운수와 ㅊ운수 모두 코드가 맞는 사장끼리 내통하며 상조회를 만들어 노조를 와해시킨 사례”라며 “부당노동행위 증거를 찾기 힘들어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되지 않거나 기소돼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 노조법 개정 공동투쟁 나서야”

택시 사업장의 노사관계는 원래 불안하다. 택시산업 자체의 어려움과 경영상의 열악함, 전액관리제·사납금제·최저임금제 등 각종 제도 시행에 따른 갈등, 복잡한 근로형태 등이 맞물린 결과다. 여기에 복수노조까지 허용되면서 노조 간 조직 확보 경쟁으로 인해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던 갈등 요인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조직력이 약한 소수노조의 경우 회사가 교섭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노조도 교섭력이 약하기 때문에 대화나 협상보다는 고소·고발로 가는 경우가 많다. 고소·고발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갈등이 증폭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단점이 있다.

정부영 민주택시노조 교선국장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이 우선”이라며 “소수노조의 교섭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하에서는 이런 문제가 재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국장은 “회사도 이런 점을 노리고 과반수노조를 조직하고 있다”며 “복수노조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동부가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데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를 방치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택시사업장에서 잇따라 생겨나고 있는 ‘사용자 지원노조’는 사용자의 지배·개입에 따른 노노갈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결권 보장이라는 복수노조의 애초 취지가 무색하게 된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역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승기 사무국장은 “창구단일화 제도로 인해 소수노조가 되는 순간 단결권과 교섭권은 모두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근본적으로 창구단일화 제도를 없애고 노조에게는 무조건 교섭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사용자 지원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조를 와해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노조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상자기사> “새 노조 설립 첫 번째 이유는 노동조건 악화”

민주택시노조·노무법인 비전 18개 신규 사업장 실태조사 결과

최근 민주택시노조와 노무법인 비전이 복수노조가 설립된 18개 사업장의 분회장을 면담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새 노조를 설립한 이유로 노동조건 악화와 기존 노조의 비민주적인 운영·근로형태 차이 등이 꼽혔다. 노조를 새로 설립한 첫 번째 이유는 “사용자의 일방적인 노동조건 악화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기존 노조에 대한 불만”이었다. 사납금을 인상하거나 차량을 노조와 상의 없이 매각하고, 임금지급 기준이 되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며, 정년제를 신설해 고용불안을 조성하는 것 등이 새 노조를 결성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기존 노조의 비민주적인 운영이었다. 조합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이 정리 돼 있는 단체협약이나 임금협정·규약조차 볼 수 없는 곳이 적지 않았다. 본인들이 내고 있는 조합비가 어떻게 지출되고 있는지 제대로 감시가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김아무개 노조 ㅅ택시분회장은 “노조 위원장이 단체협약·취업규칙·선거규약을 책상 안에 넣고 잠그고 있었다”며 “시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알아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ㅅ운수에서는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조 위원장과 노조측 협상위원들 간에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박아무개 ㅅ운수 분회장은 “교섭 과정에서 협상위원들이 제시하는 안은 무시되고 위원장이 제시하는 안과 사측이 제시하는 안이 흡사했다”며 “협상위원들이 동의를 안 해 주니까 협상위원을 전원 교체했고, 그 뒤 1주일 만에 교섭이 타결됐다”고 말했다. 활발히 활동하던 노조측 협상위원은 노조에서 제명됐고, 얼마 뒤 해고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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