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도입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와 한나라당 지도부가 진화하는 일이 발생했다. 의사 출신인 안홍준 한나라당 정책부의장은 이날 "한미 FTA가 발효돼도 보건의료체계에 문제는 없지만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영리병원이 유치돼 경우에 따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된다"며 "이는 (같은 진료를 하는) 국내 병원과 차별성이 있어 문제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황우여 원내대표가 급히 말을 자르며 "한미 FTA와 영리병원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안 부의장의 지적은 영리병원이 한미FTA와 만나 국민건강보험을 흔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시민단체의 우려가 ‘괴담’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이 같은 의견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기된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최근 정부 국책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개최한 한미FTA 토론회에서 "국내 병원들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영리병원과 차별성을 문제 삼으며 영리병원에 대한 허용 요구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며 "인터넷상의 논란이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6개 지역이다. 만약 정부가 병원들의 반발을 막지 못해 영리병원이 확대되면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영리병원 의료비 인상 초래=정부는 한미FTA가 보건의료서비스 부문을 ‘미래유보’로 정해 보건의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미래유보란 앞으로도 한국이 FTA와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리병원 도입은 지난 2003년부터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추진한 정책으로 FTA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그러나 예외조항(부속서)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있다. 부속서에 따르면 "한국의 보건의료정책 권한이 경제자유구역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가 영리병원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없게 되면, 영리병원과 불공정한 경쟁을 하는 비영리병원들은 경영난 해소를 위해 비급여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의료비 증가가 불가피하다. 또 한 번 개방한 것은 다시 되돌릴 수없는 없는 '역진방지 조항'으로 인해 외국이 투자한 영리병원의 부작용이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정부도 이를 인정했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주최한 한미FTA 토론회에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을 보건의료 정책과 충돌하는 문제로 취소하거나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FTA 반대론자가 영리병원에 대한 역진방지조항 적용 여부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한미 FTA에 날개 단 의료민영화=
영리병원은 민간보험과 한 몸이다. 민간보험에 가입해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사람은 건강보험료 인하를 요구하거나 건강보험을 이탈하려 해 건강보험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ISD(투자자국가 분쟁해결 소송제도)도 논란이 되고 있다. FTA는 보건정책 등 공공부문에 대해 ISD의 예외조항으로 뒀다. 그런데 또 예외조항이 있다.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으로 미국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투자자는 한국을 제소할 수 있다. 미국기업이 공공정책까지 제소할지 여부는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영리병원인 센츄리온이 2009년 NAFTA의 ISD를 통해 캐나다를 국제중재재판에 제소하는 일이 최초로 발생했다. 한국의 건강보험과 유사한 캐나다연방법이 영리병원 설립을 어렵게 해 이익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병원이 재판소에 공탁금을 내지 않아 재판이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공공의료정책도 ISD의 제소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다.

정부는 건강보험 붕괴에 대한 우려를 ‘괴담’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뒤로는 계속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건강보험 재정통합과 관련한 헌법소원 판결을 앞둔 시점에 건보통합 반대 전도사인 김종대씨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아울러 영리병원 도입론자인 지식경제부 차관 출신인 임채민씨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해 논란을 일으켰다. 자칫 건강보험에 대한 헌재 판결이 의료민영화의 우회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병원장(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인 정의화 한나라당 의원은 2009년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정부에 맞서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중산층의 병원 문턱이 높아지고 건강보험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며 "투자금 환수를 인해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된 병원이 속출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미FTA는 영리병원에 날개를 달아 줬다. 한미FTA가 '의료민영화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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