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1. 볼리비아 코차밤바 지방정부는 99년 상하수도 서비스를 미국의 다국적기업 벡텔이 지배하던 기업 아구아스 델 투라니에 매각했다. 세계은행이 98년 코차밤바 공공 물 서비스부문을 사유화하지 않으면 시의 물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2천5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2000년 1월 수도요금이 35% 인상되자 코차밤바 시민 수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 도시는 4일 동안 마비됐다. 시위가 일주일 동안 계속되자 볼리비아 대통령은 계엄령까지 선포했지만 같은해 4월 총파업이 일어났다. 정부의 탄압으로 수백 명의 시민이 부상을 당했고 급기야 17세 소년이 사망했다. 4월11일 정부는 패배를 인정해 물 사유화에 대한 입법을 철회했고 아구아스 델 투라니는 철수했다.

# 사례2. 세계적 물기업으로 세계 상수도 시장 1위 기업인 베올리아는 미국 내 가장 큰 상수도 위탁사업 도시였던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지난해 계약을 파기당했다. 당초 계약만료(2020년) 기간보다 10년 일찍 계약이 파기된 것이다. 계약이 파기된 이유는 시민들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수도요금을 과다하게 부과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삭감하고 계약 당시 약속한 수도품질 유지에 투자를 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베올리아는 10년 동안 상수도 운영 과정에서 시당국에 각종 부채를 떠넘겼다. 2007년에는 1억4천만달러에 달하는 위탁비용을 추가로 요구했다. 최근 2년간 미국에서는 4개 이상의 도시가 베올리아와의 계약을 취소하고 다시 시에서 운영을 맡기 시작했다.

볼리비아의 사례는 공공부문이 해외자본에 넘어갔을 때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두 번째 사례에서는 미국 내에서도 상수도 민간위탁으로 인해 피해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급격한 수도요금 인상으로 인한 시민들의 반발, 그리고 민간위탁으로 인한 폐해와 번복은 강 건너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미FTA로 인해 물·가스·철도·발전 등 공공부문이 민영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상수도 사업은 가스·발전이나 철도에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물산업 민영화와 초국적 자본의 투입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내놓은 ‘한미FTA 이후 한국의 물 민영화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수도 체계는 공기업인 한국수자원공사가 댐·하천을 이용해 원수 또는 정수로 복수의 지방자치단체에 판매하는 광역상수도 부문과 164개 지자체가 공사로부터 구매하거나 자체 하천 또는 지하수를 이용해 관할 지역주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지방상수도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전체 수도공급량의 40%, 후자가 60%를 차지한다. 현재 수도법상 민간위탁이 허용되는 부분은 지방상수도 부분이다. 즉 시민들이 지자체로부터 수돗물을 직접 공급받은 부분을 의미한다.

물 민영화와 초국적 자본 진출 본격화되나

한미FTA 부속서Ⅱ의 환경서비스 유보조항에는 음용수 처리·공급서비스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서조항이다. 단서조항에는 “사적 공급(private supply)이 허용되는 한도에서 민간 당사자 간 계약에 따른 해당 서비스의 공급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미 우리나라 수도법이 상수도 위탁사업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 물 기업이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세계적으로 민간위탁은 매각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의 민영화 정책으로 통용된다”며 “한국 수도법의 지방상수도 민간위탁 허용 수준은 모든 기업에게 위탁을 허용하는 높은 수준의 민영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상수도 민영화를 위한 수순을 밟아 왔다. 2001년 수도법 개정으로 하수도 사업에만 허용되던 민간위탁이 상수도 사업까지 확대됐고, 환경부와 행정안전부 등은 164개 지자체가 운영 중인 지방상수도를 40개 권역별로 통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200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물산업육성정책은 권역별 통합 지방상수도를 기반으로 대형 물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정부, 수년 전부터 물 민영화 수순 밟아

한지원 연구실장은 “지금까지는 한국수자원공사가 혼자 위탁시장에 참여하는 형태였다”며 “한미FTA가 발효되면 내국민대우를 누릴 수 있는 외국 물 기업들이 민간위탁 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위탁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이 민영화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할까. 전국공무원노조가 2006년 진행한 ‘상수도 사업 구조개편 비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경우 자카르타의 상수도가 민영화되고 초국적기업에 넘어가면서 수도요금이 2001년에서 2004년 사이에 연평균 35% 증가했다. 민영화 당시 노동자 1천여명이 정리해고됐다. 영국은 89년 10개 지역수자원기구를 완전 사유화했는데 89년과 95년 사이 수도요금이 106% 인상됐고, 기업이윤은 692% 증가했다.

물과 함께 민영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부문은 철도다. 최근 국토해양부가 2015년부터 수서에서 출발하는 KTX 호남선(수서~목포)과 경부선(수서~부산) 고속철도 운영권을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밝혀 한미FTA 발효와 함께 국내기업뿐만 아니라 해외자본의 진출까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미FTA 협정의 철도부문 유보내용은 “철도공사만이 2005년 6월30일 이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고, 국토해양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만이 2005년 7월1일 이후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2005년 7월1일 이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운영만을 철도공사의 역할로 한정한 것이다.

철도산업, 민영화에 외국자본 진출?

한미FTA의 영향으로 적자노선의 운영이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 현재 철도는 KTX를 제외하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적자를 내고 있다. 정부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공공할인·적자선 유지·특수목적 사업 등을 위해 공공서비스 의무보조금제도(PSO)에 따라 보상을 해 주고 있다. PSO 보상금은 정부지원금이 아닌 법정 의무금이다. 하지만 2005년 7월 이후 건설·운영되는 노선에 외국자본이 진출하게 되면 PSO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원가 이하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대전·대구·부산지하철 역시 낮은 요금을 부과하면 경쟁에 비합치한다는 이유로 제소될 수도 있다.

철도 역시 물과 마찬가지로 이미 수년 전부터 민영화 작업이 시작됐다. 2005년 철도산업이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으로 분할된 것이 대표적이다. 박흥수 운수노동정책연구소 철도정책연구원은 “미국은 이미 2003년부터 철도 사업 분야에 대해 경쟁체제 도입을 요구했다”며 “당시 건설교통부는 그런 점까지 고려해 철도의 시설과 운영 분리를 추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토부 업무보고 내용대로 철도 운영을 경쟁체제로 전환할 경우 국민 여론 등 정치지형이 변하더라도 다시 공사만 철도를 운영하게 할 수는 없게 된다. 래칫 조항에 의해 한 번 풀린 규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열린 한 토론회에서 “미국은 한미FTA 협상 전에 공공부문 민영화를 강력히 요구했고, 협상 과정에서도 전력과 가스의 유지·보수 분야 개방, 철도망의 시설과 운영 개방 등 상당히 구체적인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송 연구위원은 “공공서비스를 포함한 서비스 개방범위는 모든 분야이며 내국민대우·최혜국대우·시장접근 제한조치 도입 금지·현지주재의무부과금지가 포괄적으로 적용된다”며 “공공부문 관련 조항의 모호성과 포괄성만큼 공공부문의 개방 정도의 해석·실내용, 이를 둘러싼 분쟁과 투자자의 제소 권한은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지난 10년간 추진해 온 정책들이 공공부문 민영화 1라운드였다면, 한미FTA 발효와 함께 공공부문 민영화 2라운드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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