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일부 정치관료의 의사일 뿐 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어 추진된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을 미리 예측하고 철저하게 준비했어야 했죠. 구체적인 준비는 고사하고 우리 경제의 각 부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계량분석조차 한 일이 없습니다.”(장재식 새정치국민회의 의원)

“급변하는 시대요청에 따라 세계 각국이 적응과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이룬 나라로는 최근에 미국과 뉴질랜드가 있으며 영국도 체질개선의 성과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도전과제를 극복해 온 우리나라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개방을 두려워하고 폐쇄적으로 그리고 내수지향적으로만 나갔던 나라들은 모두 발전의 대열에서 뒤떨어진 것을 우리 모두가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이신범 신한국당 의원)

1996년 11월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가 찬반으로 나뉘어 공방을 펼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관한 협약가입동의안 비준을 놓고 벌어진 토론이다. 야당 의원들은 OECD에 가입하면서 추진하게 될 급격한 자본이동 자유화가 우리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테니 만반의 준비를 한 뒤에 가입을 추진하자는 주장이다.

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이 성과를 내려고 안달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경실련을 중심으로 시민단체들은 ‘OECD 조기가입 국회비준 반대운동’을 벌였다. 경실련은 당시 성명에서 “정부가 국가적 중대사를 결정하고 추진함에 있어 국민을 무시하고 사회적 의사수렴 과정을 배제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여당은 단계적 시장 개방 같은 유보조항을 뒀으니 문제가 안 된다고 반박했다. 국제수준의 제도를 갖추려면 전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세계화가 지상과제이던 때였다.

아, 11월22일 … 반복되는 상황

지난해 11월22일 본회의장.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했다. 정부는 FTA를 경제영토로 포장했다. “한미FTA, 경제영토가 넓어집니다”는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자유무역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덕에 국토는 비록 세계 0.1%에 불과하지만 경제영토는 60%에 이른다”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협정을 더하면 전 세계 92%가 대한민국의 경제영토가 된다”고 선전했다. 그렇게 좋다는 한미FTA 비준안을 의결하려고 한나라당은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채 표결처리했다.

공교롭게도 14년 전인 97년 11월22일은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다. 이른바 ‘IMF 사태’다.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도산이 이어졌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고, 생계형 자살이 매일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99년 국회에서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99년 4월 국회는 ‘IMF 환란 원인규명과 경제위기진상조사를 위한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서 경제위기의 발생과정과 내용을 기업위기·금융위기·외환위기로 나눠 파악했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잘못된 환율 유지, 부실한 외환보유고 관리, 금융감독의 소홀, 종합금융회사 인허가 남발 및 부실감독, 너무 빠른 대외개방정책, 산업·수출정책의 잘못을 들었다. OECD 가입에 대해 당시 이계성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조사에서 “언젠가는 OECD에 가입하기는 해야 되는데 너무 성급하게 했다. 그래서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했다”고 사과했다.

OECD와 한미FTA

OECD는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개방, 금융자유화, 외국인 투자 관련 산업개방, 노사관련 법규에 관심을 보였다. 2006년 1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낸 ‘OECD 가입 이후 경제시스템 선진화의 성과평가 및 향후 정책방향’ 보고서는 OECD 가입과 IMF 외환위기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OECD 가입조건이었던 개방과 자유화 계획은 1997년 말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개혁프로그램에 따라 약속한 일정보다 더 조속히 추진됐다. 일일 환율변동 제한 폭의 상한을 없앤 것과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기업인수합병을 허용하겠다는 정책은 OECD나 IMF의 기대를 뛰어넘는 과감한 자유화정책이었다. 한 가지 명기할 사항은 IMF가 한국정부에 요구한 위기극복을 위한 구조개혁 프로그램의 내용은 대부분 OECD 가입협상에서 논의된 사안들이라는 것이며 IMF의 소수 담당자들이 수많은 과제를 단기간에 도출해 낸 것은 아니다.”

이후 IMF와 관련해 밝혀진 미국의 기밀문서에 따르면 IMF 요구사항은 미국의 이해와 정확히 일치했다. “IMF는 한국정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사실상의 지배주주인 미국과 긴밀한 사전협의를 거쳤으며 그 내용은 급속한 자본시장 개방과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였다”는 것이다. OECD 가입과 IMF 프로그램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은 바로 미국식 금융서비스였던 셈이다.

대중의 삶이 흔들린다

그렇다면 한미FTA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97년 전후로 미국이 가장 이득을 보는 분야가 금융이었다면, 2012년의 이득은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볼 전망이다. 완전한 개방·자유화를 담은 금융 분야가 부각되지 않고, 공공 의료나 공공정책의 위기가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한미FTA가 논의되기 전부터 금융부문 개방도는 높았다”며 “한미FTA 체결로 인해 극적으로 바뀌는 금융 분야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덜해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미FTA의 독소조항으로 불리는 투자자-국가 제소권(ISD), 한 번 개방된 수준을 되돌릴 수 없다는 래칫조항(역진방지), 상대 국가의 정책으로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보상하도록 한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장 조항이 향하는 곳은 공공서비스가 될 것이다. 여기에 개방하지 않는 분야만 적시하는 서비스시장의 네거티브 방식(Negative List)의 개방이 보태지면 서비스 분야의 빗장은 모조리 풀리게 된다. 무분별한 자유화로 경제시스템이 흔들렸던 역사를 되짚어 봐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야흐로 국민들의 삶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상자기사] 정부 장밋빛 전망 믿을 수 있을까

정부는 지난해 8월5일 한미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2007년 타결된 협정이 2010년 12월 재협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재협상은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내용이어서 우리나라에 불리할 게 뻔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는 “2007년 분석과 일부 차이는 있으나 한미FTA가 우리 경제의 성장·고용·무역수지 증가를 통해 국익에 기여한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전망을 살펴보면 실질GDP 성장률은 5.66%로 2007년 5.97%보다 높았다. 일자리는 35만개로 2007년 예상치(33만6천명)를 웃돌았다. 무역수지는 향후 15년간 연평균 27억7천만달러로 역시 2007년 분석 때보다 6억5천만달러가 늘었다. 다만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4억2천만달러에서 1억4천만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봤다.

하지만 정부의 장밋빛 전망은 애석하게도 신뢰도가 높지 않다. 효과를 과장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유럽연합 간 맺은 FTA에서는 예측치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EU FTA 체결로 성장률이 5.6% 높아지고, 취업자를 단기 3만명, 장기 25만3천명 늘어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무역수지는 수출이 25억3천만달러 증가하고 수입이 21억7천만달러 늘어 3억6천만달러의 흑자를 볼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한EU FTA가 발효된 지 5개월 동안 실적은 정반대로 나오고 있다. 박주선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EU FTA 발효 뒤 2011년 7~11월 무역수지는 2010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48억5천만달러 감소했다. 2011년 11월 말 현재 한EU FTA로 인해 특혜관세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인 인증수출자로 지정된 기업은 3천943곳으로 대상기업 8천206곳의 48%에 불과했다.


[한미FTA 일지]

2006년
1월18일 노무현 대통령, 신년연설 통해 한미FTA 체결 의사 밝혀
2월3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미 의회에서 협상 출범 선언
6월5일 협상 개시

2007년
4월2일 한미FTA 협상 타결
6월16일 미, 노동·환경 등 7개 분야 수정안 제의
6월21~27일 추가협상(1차 서울, 2차 워싱턴)
6월30일 한미, FTA 합의문 공식 서명

2008년
4월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6월21일 한미 통상장관회담, 월령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합의

2009년
4월22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
11월19일 한미 정상회담(서울) FTA 진전 협력 합의

2010년
6월26일 한미 정상회담(토론토), 오바마, FTA 새로운 논의 지시
12월3일 한미 통상장관회의(미국 메릴랜드주) FTA 추가협상 타결

2011년
2월10일 한미 통상장관, FTA 추가협상 합의문서 서명
5월4일 국회 외통위, ‘번역오류’ 한미 FTA 비준안 철회
6월3일 정부, 한미 FTA 새 비준동의안 국무회의 의결
7월7일 미 상하원, FTA 이행법안 초안 채택
9월16일 국회 외통위, 한미FTA 비준안 상정
10월12일 미 상하원, 한미FTA 이행법안 가결
11월22일 한나라당 단독으로 FTA비준안 강행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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