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공장이라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도 산타는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온 산타는 아니었습니다. 이날 산타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OOO’ 이라는 명찰을 단 이들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3일, 쌍용차 평택공장 희망텐트촌 앞에선 ‘와락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렸습니다. 산타 복장을 한 쌍용차 지부 조합원들은 1박2일 동안 희망텐트촌에 입촌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시민·학생들을 맞이했습니다.

와락 안은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습니다. 19명의 동료와 가족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절망 속에서도 그들은 함께하는 이들이 있기에 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이라는 구호도 나옵니다. 어떤 이는 벌써부터 눈물바람입니다. 겨울의 찬 냉기를 견뎌내는 씨앗처럼 희망을 틔우려는 이들의 용기에 속절없이 흐르는 기쁨의 눈물입니다.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은 희망텐트촌에 입촌한 이들을 위해 곰국 1천인 분을 정성껏 끓였습니다. 세밑에 이웃과 나눠먹는 동지팥죽처럼 곰국은 희망텐트촌 사람들의 언 몸을 녹입니다. 이날 저녁, 평택공장 희망텐트촌에는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신묘년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세밑은 한 해의 끄트머리이자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성찰의 시간인 셈이죠. 되돌아보면 올해는 ‘함께 살자’는 목소리가 세상을 뒤흔든 해였습니다.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던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구호를 현실로 이끈 주역이었죠. 아니 그와 함께 살고자 했던 희망버스 참가단이 사실상 주인공이었습니다. ‘대중은 역사처럼 스스로 길을 찾는다’라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예언처럼 희망버스 참가단은 스스로 새 길을 열었습니다. 외환위기 후 만연하던 기업들의 정리해고 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입니다. 농성 157일 만에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 온 것은 함께 살자는 희망버스의 염원이 모두에게 통한 겁니다. 이제 희망버스는 쌍용차 희망텐트촌에 정차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한진중공업에서의 기적이 내년에는 쌍용차의 희망텐트촌에서도 일어나길 기원해 봅니다.

희망버스에서 분 대동의 바람이 일선 사업장에는 미치지 못한 탓일까요. 지금 일선 사업장에선 분열의 기운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올해 7월부터 단위 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됐습니다만 노동자의 단결권 확대와는 거리가 먼 양상을 보인 탓입니다. 기대했던 만큼 무노조·유령노조 사업장에서 활발하게 새 노조가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노동계의 조직화 작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던 것이죠. 복수노조는 조합원 규모가 작고, 사용자의 영향력이 강한 택시와 버스업종에서 대거 나타났습니다. 일부 사업장은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되기도 했습니다만 사용자지원 노조 논란은 불식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노조 전임자임금을 금지하는 대신 노조활동에 대한 근로시간을 면제한 타임오프 시행과 더불어 노사관계의 틀을 바꾸는 일대 사건입니다. 새 제도가 시행되면 다소 시행착오가 발생한다고 하지만 최근 상황은 우려 정도에 그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타임오프는 노조활동을 제약하고 있으며 복수노조 허용은 단결권 보장을 빌미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봉쇄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야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재개정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노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두 제도를 도입하면서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기로 일관해 탈이 난 셈이죠.

내년 경기가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만큼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경제단체는 경기악화에 대비해 노사정 대타협을 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만 자칫 노동자만 고통을 전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올해 실질임금 증가율은 외환위기(98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제외하면 94년 후 세 번째로 낮은 마이너스 3.49%였습니다. 경기가 나아졌다곤 하나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는 팍팍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임금 동결·반납·절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밤샘노동 철폐, 교대제 개편을 통해 노동시간도 줄이고 일자리도 나누는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장시간 노동의 온상으로 지목된 자동차업종에서 이 방안을 먼저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노사정 독자여러분,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올 한 해도 수고하셨습니다. <매일노동뉴스> 창립 20주년이 되는 흑룡띠의 해에 힘찬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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