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필,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부회장)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너무도 추웠다. 몸과 마음이 망가졌고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겨웠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건의 시작은 2009년 11월이었다. 2009년 11월26일부터 12월4일까지 철도노조는 파업을 했다. 그 후 철도공사는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1만2천여명의 조합원을 징계했고, 이 중 200여명을 해고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 정하고 있는 쟁의행위의 정당성(목적·주체, 수단과 방법, 절차 등)을 모두 갖춘 합법파업이었고, 무엇보다 쟁의행위 기간 동안 필수유지업무를 철저히 준수하며 파업이 이뤄졌다. 정부 또한 합법파업이라는 데 의견을 달리할 수 없었다. 2009년 11월26일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이후 정부는 ‘무리한 파업’, ‘명분 없는 파업’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날 노동부·검찰·경찰이 참석한 대검찰청 공안대책 실무협의에서조차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불법이 아니다"는 판단을 내렸다. 과거 철도노조의 2003년 6·28 파업, 2006년 3·1 파업 당시 파업 돌입 직전에 “불법파업”이라는 정부부처의 담화문이 발표되고 공권력이 즉시 투입됐던 상황과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9년의 경우 11월26일 파업 돌입 직전과 직후에 정부는 별다른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노조법에 의한 ‘합법파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 11월28일 대통령의 강경대응 발언 이후 11월29~30일 ‘불법파업’이라는 용어가 전격 사용됐고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12월1일 철도노조 압수수색과 정부 5개 부처(법무부 제외) 담화문 발표 등 합법파업이 불법파업으로 순식간에 둔갑했다. 그리고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1만2천여명이 징계를 받고, 200여명이 해고를 당했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노노모)은 올해 8월께 철도노조 해고자에 대한 공동대리인단을 구성해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신청 사건에 대응했다. 지난해 12월16일부터 올해 1월14일까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내내 심문회의를 진행하며 해고자 대부분이 부당해고로 인정받고 원직복직할 수 있다는 기대로 전념을 다했다. 그러나 중노위는 ‘파란지붕’의 눈치만 살피며 판정결과 통보를 늦추더니 148명의 해고자 중 초심·재심을 합쳐 41명만 구제하는 어처구니없는 판정을 했다. 현재는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인사권 남용행위를 한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은 총선을 대비해 지난 22일 사장직에서 사임했다고 한다.

친기업적 노동정책과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필두로 한 노조 말살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MB정부, 법률적 판단과 공정성을 저버리고 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중노위, 그 사이 각종 형사사건에 대한 법원의 부당한 판결 등 권력의 횡포는 무자비했다. 사건을 담당한 대리인의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는 상황이었다면 해고된 조합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철도노조 해고자였던 고 허광만 동지가 자살을 했다. 충격이었다. 영안실에서 조문을 하며 “드릴 말씀이 없네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조문을 다녀온 후 넋 놓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정권의 반노동정책과 무자비한 해고가 불러온 사회적 살인이다. 정부와 철도공사·중노위 모두는 해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해고 노동자들을 즉시 원직에 복직시켜야 한다. 11월28일 서울역에서 고 허광만 동지의 사망에 대한 정부·철도공사·중노위의 책임을 묻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인권·법률가단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철도공사는 직원들을 동원해 목장갑을 나눠 주며 출입구 곳곳을 가로막았다. 경찰까지 합세해 조합원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경찰은 기자회견 내내 신고되지 않은 불법집회라며 경고방송을 쏟아부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현재까지 노동자와 가족 19명이 사망했다. KT의 인력퇴출 프로그램과 과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3년간 40여명이 사망했고, 얼마 전 KT계열사 케이티씨에스 지부장이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철도노조 해고자 고 허광만 동지가 사망했다.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살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타살, 반노동정책에 의해 살인을 당한 것이다. 11월29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 등 1970년대에 노동운동 탄압 과정에서 고초를 겪은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이 30여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70~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이 자행한 무자비한 노조탄압·공안탄압의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진 것이다. 그 사이 30여년이 흘렀다.

철도노조의 2009년 파업이 정당한 쟁의행위였다는 것은 확고한 진실이다. 부디 정부·철도공사·중노위·법원 등 모두가 이성을 찾길 바란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둬 둘 수는 없다. 철도·쌍용차·KT 외에도 그 어떠한 노동현장에서 이와 같은 사회적 타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다.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인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정부는 즉각 노동탄압을 중단하고 반 노동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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