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올해 6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생산직 70명을 신규로 채용하겠다고 공고하자 7천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경쟁률은 100대 1을 훌쩍 넘었다. 고용과 급여·복지를 두루 갖춘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를 향한 구직 열망은 이렇게나 뜨겁다.

그런데 말이다. 현대차에서만 무려 1천650개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박태주(56·사진) 현대차 근무형태변경추진위원회 자문위원회 대표는 “현대차 노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당장 신규 일자리 1천650개를 만들 수 있고, 현대차 노사가 하기에 따라 그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서울 계동 현대그룹 본사 내 자문위원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1년에 2천488시간 ‘닥치고 노동’


‘과로의 현대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의 지난해 집계에 따르면 현대차 생산직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천488시간이다. 전 산업 평균(2천110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길다. 어디까지나 평균이 이렇다는 거고, 현대차 생산직 10명 중 4명은 연간 2천500시간 넘게 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난해 통계를 봐도 연간 노동시간이 2천시간을 초과하는 나라는 칠레(2천68시간)와 그리스(2천109시간), 그리고 한국(2천193시간)뿐이다. 이러니 현대차 노동자들은 글로벌하게도 ‘닥치고 노동’을 해 온 셈이다.

“현대차의 장시간 노동은 저임금을 벌충하기 위한 차원이나, 회사의 강제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죠. 오히려 ‘중산층적인’ 경제적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자발적 성격을 띤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만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외적 강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점에서 고용노동부의 개입은 바람직합니다.”

노동부는 지난달 국내 완성차업체 5곳의 노동시간 실태를 발표했다. 5곳 모두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연장근로 한도(주 12시간 이내)를 어기고 장시간 근로를 일삼아 온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표는 “노동부가 뒤늦게 나선 점은 유감이지만, 과거 어느 정부도 하지 않았던 근로시간 감독에 뛰어든 점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노동부의 감독 행위 자체도 고무적이지만, 노동부로부터 압력을 받은 기업들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차가 노동부로부터 한 차례 반려처분을 받은 뒤 이달 15일 다시 제출한 장시간 근로개선 계획서에는 현대차의 신규 일자리 창출 여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려면 인원충원은 불가피합니다. 현대차로서도 언제까지 정부의 압박을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현대차 회사측이 스스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근기법을 준수하려면 최소 650개의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법만 지켜도 당장 수백 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겁니다.”

아쉬운 점은 근로개선 계획서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의 사전협의 없이 작성돼 노동부에 제출됐다는 점이다. 심지어 현대차는 계획서 내용을 공개하라는 지부의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박 대표는 “회사측의 이런 태도는 근기법을 준수하겠다는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만든다”며 “회사는 해당 계획서를 지부에 공개하고, 노사협의회를 통해 구체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좌충우돌 처음 걷는 길 ‘주간연속 2교대제’

법의 잣대를 내세운 정부의 압력이 비록 노사갈등을 동반할지언정,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을 열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충분한 사회적 명분을 획득한 정부는 현재의 기조를 밀어붙일 기세다. 지난 14일 업무보고에서 노동부는 “주야 맞교대를 주간연속 2교대나 3조2교대 등으로 개편하고 이를 통해 신규인력을 채용하면 1인당 연간 1천80만원을 2년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의 숙원인 교대제 개편을 측면에서 지원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고용창출 여지가 큰 완성차업계, 그중에서도 현대차를 겨냥해 ‘당근’을 꺼내든 것이다.

“현대차 노사는 단위 사업장 단체교섭 의제로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끄집어낸 당사자입니다. 일종의 패턴 세터(Pattern Setter, 유형 설정자)인 셈이죠. 노동시간 단축은 단순히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생활은 물론이고 생산방식이나 임금체계·노동강도·설비투자 등에 영향을 미치죠. 현대차지부가 요구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로 가는 길목에는 만만치 않은 노사갈등적 의제들이 숨어 있습니다.”

현대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는 98년 고용위기 때 처음 등장했다.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자는 취지였다. 2003년 교섭의제로 확정된 뒤 2005년부터 본격적인 교섭이 시작됐다. 그 뒤 2008년 교섭에서는 현대차 주간연속 2교대제의 주요 시행원칙이 도출됐다. △노동시간의 단계적 단축(10+10→8+9→8+8) △생산물량 보전(공장별 UPH 조정·설비투자·추가 노동시간 확보·맨아워위원회 설치 및 맨아워 산정기준 마련) △물량보전에 연계한 임금보전(평일근무 10+10 기준 총액임금 보장) △전주공장 2009년 1월 시범실시, 전 공장 2009년 9월 실시 등이 그해 합의문에 담겼다.

2008년 합의에서 현대차 노사는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의 단축’이라는 원칙을 세우게 된다. 임금보전을 최우선 가치로 설정하면서 노동강도가 일부 강화되는 것을 수용한 것이다.

“현대차 노사는 우리사회에서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전진도 하고 후퇴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고, 이제 마지막 ‘깔딱고개’ 하나 남겨 놓고 있어요.”

“맨아워 고개만 넘으면 됩니다”

현대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는 현재 '맨아워'를 둘러싼 갈등 앞에 멈춰 서 있다. 맨아워는 노동자가 1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작업분량을 말한다. 현대차의 경우 맨아워 산정은 전적으로 회사의 몫이었다. 노사가 합의한 공동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만든 맨아워 기준을 놓고 회사측과 지부 대의원들이 협의를 벌여 최종 확정한다. 이런 구조에서 대의원의 교섭력이 센 사업부는 노동강도가 낮아지고, 대의원의 교섭력이 약한 사업부는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노동강도의 불평등’이 발생한다.

경영위기가 닥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시장 상황이 나빠져 물량이 줄면 지부 대의원은 양보교섭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이때 노사가 합의한 맨아워 산정기준이 없으면, 회사가 힘의 우위를 이용해 과도한 인원 구조조정을 추진하더라도 지부가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지부에게 맨아워 산정기준의 도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노사 공동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더라도, 맨아워 기준을 적용했을 때 여유인력이 발생할 경우 고용불안으로 직결될 수 있다. 때문에 지난달 출범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4대 집행부는 "맨아워와 주간연속 2교대제를 연계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지부 내 부정적 기류에 따라 근무형태변경추진위원회 자문위원들의 맨아워 연구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주간연속 2교대제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기존대로 생산물량을 유지하려면 UPH(시간당 생산대수)를 늘려야 합니다. 결국 물량이 많은 공장은 UPH를 많이 늘리고, 물량이 적은 공장은 UPH를 덜 늘리는 식으로 노동강도의 편차가 발생하게 되죠. 공장 간 노동강도를 평준화하려면 합리적인 인력 운용기준이 필요한데요. 이를 위해 맨아워 산정기준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박 대표는 “맨아워 기준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지부가 맨아워와 주간연속 2교대제를 연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현대차의 교대제 개편논의는 장기간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회사로서는 지금의 맞교대 체계를 바꿀 이유가 없어요. 제한된 인원으로 최대의 설비가동이 가능한 근무체계이니까요. 그럴수록 지부가 적극적으로 자기 의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맨아워 산정기준 마련에 대한 반대나 우려의 입장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기준 적용시 여유인력이 발생해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있고, 그동안 현장에서 맨아워 협상권을 행사해 온 지부 대의원들의 현장권력 상실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고용이다.

“맨아워 산정기준을 마련하는 동시에 ‘고용안정 매뉴얼’을 도입하자는 것이 저를 포함한 근추위 자문위원들의 생각입니다. 현대차 노사는 2000년대 들어 9번이나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는데요. 협약 내용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선언적 내용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독일 폭스바겐의 ‘노동시간 계좌제’ 등을 벤치마킹해 경영상황에 따른 단계별 고용안정 방안을 체계화하고 이를 매뉴얼로 정리하면, 맨아원 산정기준 도입이 고용불안을 초래하더라도 이를 불식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맨아워라는 깔딱고개를 넘으면 주간연속 2교대제가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는 설명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조의 사회연대 전략

현재 현대차 근추위 자문위원회는 ‘프레스-차체-도장-의장’으로 이뤄진 ‘완성차 부문’에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엔진과 변속기 등을 생산하는 ‘파워트레인 부문’에는 3교대제를 제안하고 있다. 파워트레인 부문은 워낙 노동시간이 길어(울산공장 기준 연평균 2천709시간)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실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자문위원회의 판단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는 임금보존을 전제로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완성차 부문에서 신규 일자리가 생겨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반면 파워트레인 부문의 경우 현재 2개인 교대조가 3개로 늘어난다면 인력충원이 가능해진다.

“근추위 자문위원회는 지난 9일 현대차 노사에 파워트레인 부문에 대한 교대제 변경안을 보고했습니다. 3교대로 전환할 경우 자문위원회 집계로 최소 1천여명의 신규채용이 필요하다는 결론입니다. 서두에 얘기했듯이 회사가 근기법을 지키면 적어도 65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파워트레인 부문의 3교대제 전환으로 1천여명의 일자리가 추가로 창출되는 셈이죠. 1천650개의 양질의 일자리는 노사의 결단으로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현대차의 주간연속 2교대로 줄어드는 연간 노동시간은 노동자 1명당 250~300시간 정도다. 전체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이 2천500시간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교대제 개편만으로는 선진국 수준의 노동시간 단축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현대차 조합원의 연월차는 평균 38.6일인데, 이 중 11.1일 정도만 쓰고 27일 정도가 남아요. 남는 27일에 하루 8시간을 곱하면 216시간, 하루 10시간을 곱하면 270시간이 됩니다. 결국 연월차만 다 써도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못지않은 노동시간 단축 효과가 나는 거죠. 그런데 노사는 올해 교섭에서 미사용 연월차에 대한 보상수준을 기존의 통상임금 100%에서 150%로 올렸습니다. 앞으로 연월차 휴가를 쓰는 노동자는 더욱 줄어들 겁니다.”

노동시간을 줄여 나가기 위한 진정성 담긴 노력 없이는 고용창출도 허황한 목표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박 대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부의 사회연대 전략에 가장 부합한다”며 노사의 결단을 촉구했다.

“현대차는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통해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리고서도 고용창출이라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했습니다. 지부는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현대차 노사는 사회에 기여를 할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지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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