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소도 잡아먹을 나이야."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한 끼에 두 그릇을 비워 내는 식욕을 보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그때는 돌아서면 배가 고팠고 힘이 남아돌았다. 입시스트레스만 없었다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몸을 가진 때였다.

지난 17일 기아차 광주공장 기숙사 앞에서 쓰러진 전남의 한 특성화고 3학년 김군도 그랬을 것이다. 기아차로 현장실습을 나오기 전까지 그는 건강했던 제 몸을 한없이 신뢰했을 것이다.

사고가 일어났던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김군은 8시간 휴일특근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머리가 아파 병원에 갈 채비를 하던 김군은 기숙사 정문 앞에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의식을 잃은 채 도착한 병원에서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그를 치료한 의료진에 따르면 아직 젊으니 의식을 회복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손쓸 방법이 없다고 한다.

학교를 결석한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로 건강했던 김군을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뜨린 괴물은 성인도 견디기 힘든 장시간 노동이었다. 그는 지난 8월28일 기아차 도장공장 생산라인에 배치되자마자 일주일간의 야간근무로 현장실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10.5시간씩 주당 52.5시간을 밤낮으로 일했다. 한 달에 두세 차례씩 주말특근까지 포함하면 일주일에 58시간 넘게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보낸 것이다.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이 무색해진다. 더구나 김군은 지난달에야 만 18세가 됐다. 근로기준법은 만 18세 미만 연소자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도 하루 8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당 최대 46시간을 넘어서도 안 된다. 9월과 10월 두 달간 근로기준법상 '연소근로자'였던 그는 장시간노동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

기아차와 학교, 김군은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체결했다. 각각 갑·을·병이 돼 체결한 협약서에는 "근무시간은 일일 8시간 이내로 하되,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이 역시 휴지 조각이 됐다.

김군은 고3 현장실습생이었지만 기아차 노동자들처럼 주야 맞교대를 했고, 정규직도 꺼린다는 도장라인에서 기계처럼 차체에 색을 입히는 고된 노동을 했다. 김군처럼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특성화고 학생들이 기업체에 들어가 싼값에 혹사하는 사례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06년에도 교육당국은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통해 현장실습이 노동착취가 되지 않도록 제도 보안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제2의 김군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6만여명에 달하는 현장실습생들을 근로기준법 테두리 안에서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원칙적으로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의 적용을 받는 ‘현장실습생’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86다카2920)에 따라 실질적인 사용종속 관계에 있는 실습생에게만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실습생이 통상 노동자처럼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출·퇴근시간의 제약을 받는지 업무수행 과정에 대한 평가나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에 대해 임금을 받는지 등 구체적인 사실 여부를 일일이 살펴보고 노동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다.

노동부는 22일 김군을 쓰러지게 한 기아차 광주공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나서겠다고 뒤늦게 발표했다. 노동부의 조치는 환영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쓰러진 김군의 건강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부는 현장실습생이 노동권 사각지대로 내몰리기까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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