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해 7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이 나온 후 고용노동부는 실태조사에 이어 ‘사내하도급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파견과 도급 판단기준에 이은 또 다른 정부지침을 낸 것이다. ‘사내하도급 근로조건 개선 서포터즈’라는 전문가 지원단도 구성했다. 이들은 지난 8월 후 4개월 동안 자동차·조선·전자·서비스 등 4개 업종별로 팀을 구성해 ‘가이드라인 준수 현황’을 조사했다. 지난 20일 노동부와 서포터즈가 회의를 열고, 그간의 활동성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조사결과나 우수사례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자동차업종을 실태조사한 박영범 서포터즈 위원장(한성대 교수)은 △원사업주가 수급사업주에 부당한 단가인하를 요구하는 경우가 없고 △인사노무관리 및 지휘·명령권 행사에 있어 원청업체가 간섭하는 경우도 없으며 △원사업주가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고충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발표했다.

애초 노동계는 가이드라인 제정 당시 파견과 도급 판단기준이 포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반발했다. 가이드라인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과 관련된 대법원의 판례를 외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노동부는 “파견과 도급 판단기준은 법 집행 문제이므로 권고 성격의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박 위원장의 실태조사 결과에는 버젓이 파견과 도급 판단기준이 스며들어 있다. 그것도 ‘원사업주가 수급사업주에 지휘·감독권 행사를 하지 않는다’고 조사 기업들의 손을 들어줬다. 노동부는 파견과 도급 판단기준이 가이드라인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더니 ‘적법도급’이라는 조사결과를 낸 이유가 뭔가. 가이드라인 준수현황을 조사한다고 하더니 엉뚱하게도 조사범위를 확대시킨 셈이다. 노동부가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조사결과라도 의미가 있으면 그나마 나았다. 박 위원장은 대법원 판례와 정반대의 조사결과를 내 놨다. 우수사례로 든 기아자동차의 경우 생산라인 중 의장(조립) 등은 원청노동자가 일하는 곳에 하청노동자를 사용하지 않아 불법파견 같은 법적 분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혼재근무 여부는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지표다. 동일한 공정에서 원청과 하청 노동자가 섞여서 근무할 경우 하청 노동자는 원청업체 관리자로부터 지휘명령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애초 노동부는 서포터즈가 가이드라인 준수현황을 조사한다고 했다. 문제는 박 위원장이 가이드라인에 포함되지 않은 자동차 조립라인의 혼재근무까지 조사했다. 여기까지는 노동부의 의도와 다른 박 위원장의 의욕이라고 치자. 박 위원장은 기아차가 혼재근무를 하지 않아 법적분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고 평가했는데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박 위원장이 실태조사에 들어간 시점은 8월부터다. 앞서 지난 7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500여명은 원청업체인 기아차를 상대로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기아차의 정규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법적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박 위원장이 기아차의 사내하청이 적법도급이라고 규정한 셈이다. 법적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노동부와 서포터즈단이 기아차 사례를 자화자찬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면 원·하청 노동자가 분리돼 일하고 있다는 기아차의 의장(조립)라인은 불법파견 시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이마저도 논란이다. 노동전문가나 생산현장에선 이를 ‘형식적 공정분리’라고 한다. 의장라인의 경우 청색옷(원청)과 하늘색옷(하청)으로 원·하청 노동자를 구분했다하더라도 자동차 조립과정에서 섞여서 일하는 풍경은 흔하기 때문이다. 또 하청노동자들이 분리된 공정에서 일하고 있다하더라도 원청업체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 구조다. 작업량·작업속도 등을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업무지시를 할 수 없는 탓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컨베이어벨트에 의한 흐름생산공정인 자동차 조립라인에선 독립된 업무를 목적으로 하는 도급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하청업체에서 관리자를 파견해도 실질적으로 원청업체가 작업지시를 한다고 판결했다.

사정이 이러니 노동부와 서포터즈가 사내하청을 활용해 온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에서도 사내하청을 입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마당에 사내하도급 우수사례를 발표하는 노동부와 서포터즈의 행보는 이율배반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