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연 공인노무사

연말이다. ‘그녀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메일함에 새로운 편지가 도착했다. ‘그녀들’이다. 사연인즉 “연말 인사고과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하위 등급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대전에서 규모가 상당한 공공연구기관의 계약직 노동자들로 수년간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을 반복·갱신하며 행정업무를 담당해 왔다. 연구원은 기간제법 시행 2년이 다가오자 법에 의해 무기계약 간주효과가 생기는 것을 막으려고 지속적으로 불리한 근로계약을 강요했다.

그녀들의 근로계약에는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 해당하고, 사업기간의 종료시점에 근로계약도 당연 종료한다”는 식의 내용이 담겼다. 그녀들은 당연히 이러한 근로계약서 체결을 거부했고, 결국 ‘계약기간 만료’로 해고당했다.

지역사회에서 정부 연구기관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계약직 노동자인 그녀들은 당시 노조 가입대상이 아니었고, ‘기관을 상대해야’하는 개인에 불과했다.

지방노동위원회에 사건이 계류됐을 때 노동위원회는 유례없이 현장조사권을 발동해 현장방문을 하는 등 미조직노동자 사건치고는 황송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여 줬다. 현장조사를 나가서 사용자에게 선물을 받아오고, 뒤로는 노동자들에게 ‘화해’를 강요하면서 말이다. 초심 심문회의에서 그녀들은 “약자인 우리에게 어찌 이럴 수 있느냐”며 눈물로 부당성을 호소했다.

그녀들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했고, 노동위원회도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지위에 있으며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용자가 행정소송을 포기했고, 그녀들은 다시 복직했다.

복직한 뒤에도 연구원측은 계속 불리한 근로계약서 체결을 강요했지만 그녀들은 꿋꿋하게 버텼다. 집회 한 번 참석해 본 적 없다는 그녀들이 점심시간에 다른 비정규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에 연대하러 나오기도 했다.

복직 이후 그녀들은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됐다. 그녀들은 더 이상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연구원의 인사발령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이번에 인사평가를 받게 됐다. 인사고과에서 일정 등급 이하의 점수를 받으면 ‘일반 승급’을 제한할 수 있고, 무기계약직 전환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녀가 받은 등급은 업무상으로 기관에 큰 손해나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부여한 사례가 없는 매우 낮은 등급이다. 누가 봐도 ‘보복성 인사 평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은 이의신청을 하기로 했다.

그녀들을 처음 만났을 때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동자와 가냘픈 어깨를 보며 그녀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복직투쟁을 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그녀들은 용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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