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이주노동자의 고질적인 인권침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사용자의 부당한 대우나 상해·계약해지 등으로 사업장을 변경할 경우 3회로 제한돼 있는 사업장 변경횟수에 포함하지 마라는 것이다.

인권위는 이에 따라 현재 강성천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법) 개정안에 이런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국회의장에게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관련한 정책·법령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권고와 의견표명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인권위는 “외국인 근로자는 사업장 변경사유와 횟수 제한으로 부당한 근로환경하에서도 근로를 지속할 수밖에 없거나, 미등록자로 근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7년이 되면서 2011년과 2012년 체류기간이 만료되는 이주노동자가 10만명을 넘고, 이들 중 4만명 정도가 국내에 미등록 상태로 체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노동부, 고용허가제법 개정해야”=인권위는 고용허가제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에 고용허가제법 개정을 포함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주요 내용은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사유 확대 △숙련 외국인 근로자의 재고용과 안정적 생활기반 구축을 위한 절차 마련 △외국인 근로자 고용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외국인 근로자 퇴직금과 임금 지급 보장을 위한 보험제도 개선과 관련사항에 대한 다국어 안내 강화 등이다.

인권위는 이번 권고에서 사업장 변경사유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이주노동자가 폭행이나 임금체불을 당하고도 3회 사업장 이동 횟수 제한 조항 때문에 이를 감수해야 한다는 비판은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인권위는 우선 법에서 사업장 변경을 요청할 수 있는 조항이 있는데, 여기에 해당하면 사업장을 옮기더라도 변경 횟수에 포함하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현재 사업장의 고용허가 취소·고용의 제한, 근로계약 조건의 상이·근로조건 위반 등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가 있거나 근로자가 상해를 입었을 경우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돼 사업장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 인권위는 2008년 고용허가제법 개정을 권고했는데, 당시 노동부는 법에 열거된 부득이한 사유 중 휴업·폐업의 경우만 횟수에 포함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다.

인권위는 이에 따라 노동부가 자체 고용허가제 업무편람에 적시하고 있는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해고, 공사종료, 임금체불 또는 지급 지연, 폭행·상습적 폭언·성희롱·성폭력 등’ 사유를 변경횟수에 포함하지 않도록 고용허가제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국회 계류 개정안 재검토하라”=인권위는 올해 10월 강성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용허가제법 개정안에 대한 재검토 의견도 냈다. 개정안은 3년 동안 이주노동자가 취업한 뒤 사용자가 재고용을 요청하면 2년 미만의 범위에서 취업기간을 연장하는 현행 ‘3+2’ 제도를 한 차례 더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길어야 5년 동안 체류할 수 있었던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이 최장 10년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개정안에는 ‘내국인 구인이 어렵다고 판단해 장관이 고시한 사업장에서 취업기간 중 이동이 없는 경우’라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다. 5년 일하고 1개월 출국한 뒤 재입국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재입국 후에도 1년 이상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 있다. 사업장 이동이 없어야 재입국 취업을 허용해 준다는 조항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사용자의 편의만 생각하고 노동자에게는 인권침해를 참으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인권위도 국회의장에게 이런 우려를 표명했다. 인권위는 “외국인 근로자가 자신의 귀책사유 없이 해당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는 사유를 확대해 사업장 변경 횟수에 산입되지 않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용자의 부당행위나 임금체불·폭행·폭언 같은 이유로 사업장을 이동하면 사업장 변경 횟수에 포함되지 않도록 노동부에 권고한 내용이 고용허가제법 개정안에 반영돼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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