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람 기자

“누적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밤낮으로 피땀을 흘려 가며 일했습니다. 이제 회사가 살 만한데 손을 털다니요. 국가가 공적인 산업을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네요. 민영화되면 노동자들만 혼란을 겪게 되겠죠.”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책금융공사 앞에서 빨간띠를 두른 한 노동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노조 간부 30여명은 이날 정책금융공사 정문에서 시위를 벌였다. 자신들이 이뤄 놓은 경영성과를 무분별한 주식매각으로 망쳐 놓지 말라는 주장이다. 정책금융공사는 전날 주주협의회를 통해 내년 1월 매각주간사를 선정하고 지분을 공동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공사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예견된 바 있다. 공사는 지난해 10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올해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예정대로 지난 코스피 상장이 이뤄졌다.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이달 8일 현재 KAI의 주가는 공모가 대비 151.6% 올라 올해 상장된 총 61개의 품목 중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하이닉스반도체 매각 문제가 사실상 마무리되자 공사가 KAI의 민영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노조는 그동안 공사에 현 보유주식(26.41%)을 유지하고 지식경제부나 방위사업청 등 관계기관의 출자로 공기업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 왔다.

전투기나 항공기를 생산하는 사업의 특성상 국가의 책임적인 관리 아래 기업이 운영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노조는 1억원의 조합비를 쏟아부어 이러한 주장을 담은 정책제안서까지 만들었다. 국회와 항공 관련 연구소 등 각종 기관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전달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뜻이 좌초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만성 적자의 어두운 터널을 거쳐 온 KAI는 2006년 처음으로 적자를 벗어났다. 이후 5년 만에 기업공개(IPO)를 하기에 이르렀는데, 다시 민영화 위기를 맞게 됐다. 사실 국내 유일의 완제 항공기와 전투기를 생산하는 업체라면 충분히 국가적인 보호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실제 대다수 국가들은 항공우주산업을 정부 주도 아래 육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금융공사가 별다른 명분도 없이 지분매각을 감행한다면 여러 의혹만 살 뿐이다. 의료·인청공항 등 MB 정부 들어 추진되고 있는 ‘닥치고 민영화’ 바람에 스스로를 합류시킨 셈이니 말이다.

공사는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결정을 되돌려야 한다. 혹여 그들의 결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한다면 역시 같은 논리로 공사와 일반 금융기관과의 경계가 허물어질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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