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국의 복수노조 허용은 큰 의미를 갖는다. 노동자들에게 노조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복수노조 제도와 함께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사용자 친화 노조를 양성하고,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고 있다.”

카렌 커티스(51·사진)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적용국 부국장의 말이다. 양대 노총이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석한 그를 지난 14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만났다.


- 한국 정부가 ILO에 가입한 지 올해로 20주년이 됐다. 한국의 노동기본권 보장수준은 높아졌나.

“몇 가지 지점에서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 한국의 노동계가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 한국 정부를 수차례 제소했고, ILO는 90년대 한국의 노동기본권 침해 실태에 집중했다. 긍정적 변화 중 첫 번째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선택해서 가입하는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95년 민주노총이 창립하면서 노조 상급단체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최근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도 허용됐다. 복수노조 허용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한국의 복수노조와 함께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ILO 협약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창구단일화 제도를 어떻게 보고 있나.

“복수노조 체계에서 단체교섭 대표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나라별로 노사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교섭대표권을 정하는 방식은 단체교섭을 촉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또한 복수노조 제도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대표체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어용노조를 만들거나 기존의 노조를 차별하는 식으로 결사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번 국제 심포지엄의 발표를 들어보니 한국에 복수노조가 도입된 이후 사용자 친화 노조가 설립되거나 노동운동이 약화되고 있다.

이럴 때 한국 정부는 신속하게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 복수노조 제도가 기존 노조를 약화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도 한국의 창구단일화 제도에 대해 공식입장을 낼 예정이다.”


- 한국의 한 경제신문이 커티스 부국장의 말을 인용해 “한국의 창구단일화 제도는 좋은 제도”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의 고용노동부는 당시 보도내용을 복수노조 홍보자료에 게재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나.

“알고 있다. 당시 내가 이야기한 것은 교섭의 형태나 교섭대표권을 정하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ILO의 원칙이라는 말이었다. 한국의 제도를 특정해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발언의 의도가 왜곡돼 전달된 것 같다.”


- 한국의 대표적 무노조기업인 삼성이 ILO에 ‘노조가 아닌 근로자 대표제’에 대해 질의한 바 있다. 노사협의회나 상조회 같은 비노조 종업원 대표체가 사용자와 교섭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자주권을 가진 진정한 노조가 교섭대표권을 부여받아야 된다는 것이 원칙이다. 내 생각엔 삼성도 노동자들이 진정한 노조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 지난 96년 제소된 ‘공무원·교사 노동3권 및 정치적 자유 제약에 관한 제소’(1865호)는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 가장 오래 계류돼 있는 사건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나.

“노동계의 노력으로 전교조가 합법화된 것은 진전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단결권만 보장받았을 뿐이다. 단체교섭권은 일부만 인정되고, 파업권은 부정되고 있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공무원노조의 경우 해직자들의 노조 가입을 놓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이유로 설립신고증도 내주지 않고 있다. 매우 심각한 노동기본권 침해다.”


- 한국 정부는 특수고용직이 가입된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에 대해서도 시정권고를 내린 상태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의 법원은 특수고용직이 가입됐다는 이유로 정부가 노조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문제라고 판단했는데.

“한국의 법원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ILO도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수고용직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이들이 누구와 교섭해야 하는지는 지정하지 않았지만, 원활한 교섭이 이뤄지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이들도 노조를 선택해 가입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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