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례/ 서울남부지법 2011카합575 단체협약효력정지및방해금지가처분



1. 언제나 끝이 날까, 얼마나 돌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나



몇 번을 다시 봐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던 다큐멘터리가 있다. 김미례 감독의 2003년 작품인 <노동자다 아니다>.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인 건설 지입차주 노동자들이 어떻게 소위 ‘사장님’으로 불리게 됐는지, 그러나 그들이 왜 사장이 아닌지, 그리고 노동자의 길을 걷기위해 그들이 어떻게 피눈물을 흘리며 싸워 왔는지, 논리적인 이론으로 빽빽하게 채운 장문의 글이나 책들보다 그 60분의 울림이 훨씬 더 명쾌하게 머리와 가슴을 깨워 줬던, 단연 명작이다.



“시멘트 가득 싣고서 또 다시 떠나는 이 길. 언제나 끝이 날까, 얼마나 돌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나. 오가는 길 위에 석양이 고달픈 오늘을 알까. 어느새 탕뛰기의 노예가 돼 힘겨운 하루가 덧없이 저무네.”(박성환의 노래 ‘노동자다 아니다’ 중에서. 이하 동일)



죽은 조합원을 차가운 땅에 묻고 돌아서서 전국 순회투쟁을 시작하는 그들 노동자들의 모습을 배경으로 장엄한 전주와 함께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고 살고 있으면 그게 노동자지, 노동자가 맞느니 아니니 뭔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지금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늘 가슴이 먹먹하다.



2. 이랬다저랬다 부르는 대로 온몸을 내던지고 구르라 하네



“레미콘도 돌고 운전대도 돌고, 세상은 미친 듯이 돌아가는데. 이랬다저랬다 부르는 대로 온몸을 내던지고 구르라 하네.”



살펴보고자 하는 대상판례(결정)는 일단 가처분신청사건의 결정이다. 가처분 및 가압류사건과 같은 이른바 보전소송은 본안소송이 있을 것을 전제로 해 그 판결의 집행을 쉽게 하거나 확정판결 전까지 생길 수 있는 손해의 발생을 방지할 목적으로 하는 재판으로서 일시적으로 현상을 동결하거나 임시적인 법률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안 내용에 대한 실체적 당부를 따지기 보다는 잠정적으로 급박하게 보전을 해줘야 할 권리의 존부를 우선 따지는 재판이라는 한계는 있다.

근래 노동관련 가처분사건에서 법원이 다소 고무적인 판단(결정)들을 행하는 것에 대해 보전소송이라는 특성을 도외시한 과도한 해석과 의미 부여라는 경계의 주장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대개 신속성을 요하는 노사관계 사건들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하고, 분명한 실체법적 판단은 아니나 이어질 본안소송의 향배를 어느 정도는 가늠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처분결정에도 주목해 봐야 할 의의는 충분하다.

신청인들은 크게 두 가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노조 대표자가 무자격이고 위법한 노조(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노조에 해당되지 아니함)라는 주장과 단체협약이 형식을 갖추지 않아 무효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노조 대표자 변경신고의 수리를 대표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부가 거부했고 또한 근로자가 아닌 자들의 가입을 허용하고 있어 노동부로부터 노조가 수차례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노조 대표자가 근로자가 아니라거나 노조의 지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단체협약과 관련해서는 이행확약서의 형태로 돼 있고 일부 연서명이 없다 해도 당사자 쌍방의 의사가 명확히 표시돼 진정성과 명확성은 담보됐으므로 무효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 결정의 의의는 노동부가 행한 노조 설립신고사항 변경신고 반려처분이나 노조에 대한 시정명령만으로는 노조의 이른바 합법성이 부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노조법(제2조 4호 라목 단서)은 해고된 근로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경우 중노위 재심판정 때까지 조합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주고 있는데 이는 기업별 노조에 국한해 적용되는 규정이고 피신청인 노조와 같은 산업별 노조에까지 일반적으로 적용돼 모든 노조가 사용자와 직접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들만 조합원으로 해 설립돼야 하는 것을 강제하기 위한 규정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학설 및 판례의 입장이다(대법원 1990.11.27.선고 89도1579전원합의체판결 등).

또한 노조법이 기본적으로 노조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면서(제5조) 신고주의를 택하고 있는 취지는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노조에 대한 효율적인 조직체계의 정비·관리를 통해 노조가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춘 조직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노조를 보호·육성하고 그 지도·감독에 철저를 기하게 하기 위한 노동정책적 고려에서 마련된 것(대법원 1997.10.14.선고 96누9829판결)이지,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노조에 한해 노동기본권의 주체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노동기본권의 주체로서 어떠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를 정한 것이 아니며(‘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사법연수원, 2010), 나아가 설립신고라는 형식적 요건을 결한 이른바 법외노조의 경우에도 노조로서의 실체적 성립요건을 갖추고 있는 한 무조건 단체교섭권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대법원 1997.2.11.선고 96누2125판결).

노동부가 노조에 행한 자율시정명령(“레미콘·덤프트럭 지입차주들로 대부분 구성된 노조 소속 건설기계분과의 활동은 노조법 제2조 4호 라목에 해당하므로 시정할 것”) 역시 권리의무관계 및 법적 지위의 변화를 가져오는 행정청의 처분이 아니라 사실행위에 불과하며, 그에 따르는 통보 역시 행정청의 앞으로의 행정행위에 대한 고지일 뿐 형성적 효력을 가지는 처분이 아님은 마찬가지고 이는 헌법상 기본권을 향유하는 근로자들의 단체인 노조와 이에 대한 정책적 고려에서 마련된 관할 행정청과의 관계에 비추어 당연한 것인바 단지 노동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노조의 자격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이러한 취지에 비추어 노조 대표자 및 노조의 자격에 문제가 없음을 인정한 이 사건 결정은 지극히 타당하고 당연하다.

한편 노조법(제31조 제1항)은 단체협약을 서면으로 작성해 당사자 쌍방이 서명 또는 날인해야 한다고 해서 ‘서면’, ‘당사자 쌍방’, ‘서명 또는 날인’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노사관계가 집단적·계속적이라는 특성에 따라 체결 당사자를 명백히 함과 동시에 당사자의 최종적인 의사를 확인함으로써 단체협약의 ‘진정성’과 ‘명확성’을 담보하려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1.5.29.선고 2001다15422,15439판결, 대법원 2002.8.27.선고 2001다79457판결, 대법원 2005.3.11.선고 2003다27429판결 등). 명칭은 중요하지 않은바 ‘이행확약서’라는 제목으로 작성됐고 일부 기명날인이 돼 있거나 교섭위원 전원의 연서명이 누락됐다 하더라도 신청인 건설회사들과 피신청인 노조가 체결한 문서의 진정성과 명확성은 담보됐으므로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은 더 따질 여지도 없어 보인다.



3. 투쟁의 시동을 멈추지 마라



“노동자다 아니다 따지지를 말아라. 우리 앞에 갈림길은 이제는 없다. 오늘도 달린다, 세상을 바꾼다. 투쟁의 시동을 멈추지 마라. 노동자의 길을 가련다.”



근로기준법이든 노조법이든 법이 보호할 필요가 있는 근로자 해당 여부는 형식이 아니라 이른바 사용종속관계의 실질을 살펴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 특히나 노조법상의 근로자 개념은 근기법상의 개념보다 더 넓게 보고 있고 최근 대법원에서도 사용종속관계 자체를 판단하는 각 표지들의 적용방식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이제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법 적용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사회적 논의들이 전개되고 있는 마당에, 언제나 노사평화를 해치는 주범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행태가 개탄스럽다. 본안소송에서도 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며 누가 뭐라던 노동자의 길을 가고 있는 진짜 노동자, 건설노동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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