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

1. 아무리 가려도 사물은 존재한다. 거짓의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사물의 실체를 없앨 수는 없다.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이 문제라면 그것은 노동운동이 쟁취해 온 노동자권리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주체의 작용으로 정확히 평가하고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주체내부의 권력관계 때문에 사물에 대한 주체의 작용, 즉 운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때가 있다. 권력관계로 주체가 존재하는 경우 운동에 대한 평가의 왜곡이 나타난다. 이런 경우 주체가 아닌 주체가 작동하는 객관, 즉 사물을 가지고 주체의 운동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그 운동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지금 노동운동이 어떠하냐고 묻는다면 그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은 답을 달리할 수 있다. 이때는 노동운동이 확보해온 노동자권리를 들여다보면 노동운동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볼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노동자권리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면 이 나라 노동운동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 지 알 수 있고, 그 과제를 살필 수 있다.

2.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했다. 근로계약은 사용자의 눈으로 보면 일정한 시간 동안 근로자에게 자신을 위해 근로를 제공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계약이다. 사용자는 임금을 지급하기로 하고서 자신을 위해 근로자를 복종시켜 근로시킬 수 있는 법적 관계를 가져오는 계약이다. 그 시간 사용자가 근로자를 자신에 종속시켜 지시하고 명령할 수 있다. 사용자의 권리이고 근로자의 의무가 되는 시간, 이것이 근로시간이다. 근로시간에서는 사용자는 권리를 행사하는 자, 근로자는 의무를 이행하는 자인 시간이다. 어떤 관계에서 어느 일방은 권리만 있고 다른 일방은 그 권리에 따른 의무만 인정된다면 그건 주인과 노예의 관계이다. 그것이 무력이든 국가법제도에 의해서든 아니면 계약에 의해서든 관계없이. 그러니 근로시간은 주인과 노예의 시간이다. 다만 그것이 계약에 의해서 일정한 시간으로 정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시대에 특별한 모습일 뿐이다. 근로시간에 있어서 근로자는 자유가 없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자유 확대를 위한 근로시간단축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 나라 노동운동은 어디까지 노동자권리로서 자유를 획득해왔던 것일까.

3. 세계 노동운동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운동으로 전개돼 왔다. 이미 19세기 초반 8시간 노동제를 주장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노동운동은 8시간 노동제의 도입을 자신의 요구강령으로 채택하고 투쟁했다. 5·1절도 당시 8시간 노동제 쟁취투쟁의 날이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하나의 국가차원에서 최초로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됐다. 그 직후 국제노동기구(ILO)는 1919년 제1호 조약으로 제조업에서 1일 8시간, 1주 48시간 노동제를, 1935년 제47호 조약으로 1주 40시간 노동제를 채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주 35시간 노동제가 여러 나라에서 도입됐다. 8시간 노동제가 주장된 지 200년. 이제 노동운동은 8시간 노동제를 쟁취했고 이보다 더 나아갔다. 이 나라에서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된 것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면서다. 당시 주 48시간제였다. 그리고 1989년 주 44시간제가, 2003년에는 주 40시간제가 근로기준법의 개정으로 도입됐다. 그렇다면 이 나라 노동운동은 세계 최초는 아닐지라도 근로시간단축을 향해서 세계 노동운동의 성과를 확보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까. 과연 이 나라 노동자들이 1일 8시간 이내, 1주 40시간 이내로 일하고 있는가.

4. 지금 이 나라에는 두 종류의 노동자가 있다. 세계 노동운동이 쟁취해 온, 저 러시아혁명이 최초로 도입해서 노동자권리로 확보한 1일 8시간 노동제, 근로기준법의 주 40시간제로 근로하며 사는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 이 나라 노동운동도 근로시간단축을 위해 투쟁해 왔다. 주 40시간 노동제도 금속산업연맹이 제기해서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확보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근로시간단축 투쟁을 주도한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제에서 살고 있지 못하다. 주 40시간 노동제 투쟁을 주도했던 금속산업 등 노동자들은 지금 주 40시간제로 근로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일 8시간, 주 40시간 노동제의 나라다. 모든 사업장에서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 노동제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1일 8시간, 1주 40시간 노동제는 대부분의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꿈이다. 그런데 이제 아무도 그 꿈을 쟁취하자고 외치지 않는다. 그저 이 나라에는 법정근로시간에 따라 근로하는 노동자와 법정근로시간을 넘어서 근로하는 노동자, 두 종류의 노동자가 존재할 뿐이다.

언제 이 나라 노동운동이 노동자를 두 종류로 만들기 위해서 투쟁했었나.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이 나라에서 근로시간단축은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노동운동이 전개해온 근로시간단축투쟁은 단순히 국가법에서 법정수당의 기준이 되는 근로시간의 단축을 위한 투쟁이 아니었다. 실제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근로자의 자유는 실제 근로시간의 단축을 통해서 확대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노동운동은 전개돼 온 것이다. 1817년 로버트 오웬이 최초로 8시간 노동제를 정식화한 것은 8시간 이상 근로할 경우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해달라고 그래서 노동자의 생활임금 쟁취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1866년 국제노동협회가 8시간 노동제를 자신의 요구로 채택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근로시간단축은 실제 근로시간단축이 아니었다. 이 나라 많은 노동자에게는 단지 근로기준법상 시간외근로수당의 지급기준이 되는 법정근로시간의 변경만일 뿐이었다. 그래도 이것을 노동자권리의 쟁취라고 말해왔다. 그렇다고 가르쳤고 배웠다. 단체협약에 당당히 새겨 넣었다. 실제 근로시간 단축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근로시간단축의 역사는 많은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역사가 아니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은 근로시간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가 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을 노조가, 노동운동이 노동자권리로서 실제 근로시간단축으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법정근로시간을 넘어선 근로를 방치하거나 묵인했다. 노동자권리에 예민하게 대응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법정수당 확보를 통해 총액임금의 확보로 임금인상투쟁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데 활용했다.

5. 지금 사업장을 보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은 금속노조, 이 나라 노조운동의 주력사업장이다. 2조2교대제로 상시 운영되고 있다. 생산시설을 쉼 없이 가동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교대제로 주야맞교대로 노동자들은 근로하고 있다. 1일 10시간 넘게 근로하니 1주일에 60시간이 넘는 근로를 상시적으로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법정근로시간,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이 정한 소정근로시간 주 40시간은 아예 이 사업장에서 먼 그들만의 세상, 다른 종류의 노동자 이야기일 뿐이다. 교대제가 그대로 변함이 없으니 1989년 주 48시간에서 주 44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이 단축됐다고 해서 시간외근로수당만 추가로 지급됐을 뿐이다. 2003년 주 40시간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됐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근로기준법이 노사당사자의 합의로도 1주일에 12시간을 초과해서는 근로시킬 수 없도록 규정했어도 소용이 없었다. 52시간을 초과해서 돌아가는 교대제는 아무리 노조가 합의하고 근로자가 동의를 했어도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사용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사용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금속산업연맹의 주 40시간결사대가 돼서 2박3일 노숙상경투쟁을 해 결국 2003년 주 40시간 노동제를 쟁취했다. 그랬어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여전히 주 40시간 노동제를 자신의 권리로 확보하지 못했다. 노조는 사용자와 협약으로 기존 교대제를 그대로 유지해왔다. 근로기준법 위반을 노조가 합의해 줘서 기존 교대제를 존속시켜왔다. 이렇게 기존 교대제가 노조와 사용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으로 존속해왔으므로 이 나라의 법은 노동자권리를 위해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지난 5월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이걸 바꾸겠다고 투쟁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잠 좀 자고 일하자’고 외쳤다. 심야노동철폐를 외쳤다. 뭐 대단한 요구를 했던 것도 아니다. 법이 정한 대로 주 40시간만 근로하겠다고 당당히 외쳤던 것도 아니다.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이 이렇다. 법이 노동자의 권리로 확보해준 것조차도 노동자권리로 쟁취하겠다고 감히 나서지 못했다. 교대제 변경을 금속노조는 내년의 주된 투쟁과제로 대의원대회에서 확정했다. 주간연속 2교대제를 쟁취하겠다는 것이다. 심야노동을 철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이 나라에서 노사는 시업시간과 종업시간을 몇 시로 할 것인가로 논의하게 될 것이다. 1일 10시간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가지고 교섭할 것이다. 그러면서 야간근로시간이 단축됐으니 사용자는 임금을 감축하겠다고 할 것이고 노조는 임금 삭감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주장할 것이다. 이것이 근로시간에 관한 이 나라 노동운동의 투쟁의 지점이다. 심야노동철폐, 임금삭감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 쟁취. 이렇게 이 나라에서 주 40시간 노동제는 노동운동에 의해서 무시되고 있다. 그러니 주 40시간 노동제는 이 나라에서 노동자권리가 되지 못한다. OECD 회원국 중 최장의 근로시간이라는 기록은 이 나라 노동자가 그저 세운 게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에서 노조가, 노동운동이 세운 기록이다.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 앞에서는 자신을 숨길 수 없다. 뭐라 변명하더라도, 뭐라 거창한 전망을 내세워도.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