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려하고 깨끗한 산업으로 인식되는 것과 달리 노동자들은 유해 화학물질과 근골결계질환 등에 노출돼 각종 업무상재해에 시달리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임에도 자연유산율이 높아 실태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노총은 지난 9일 대회의실에서 '미용분야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실태 및 건강보호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미용 노동자를 대상자를 산업안전보건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는 지난 8월부터 12월까지 미용 노동자 491명(헤어 147명·네일 149명·피부 98명·메이크업 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화려함 뒤로 위험작업에 무방비 노출”

이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72.5%가 작업 중 몸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58.7%는 작업으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6.3%는 지난 1년 동안 사고나 재해를 경험했다. 사고 종류는 도구 사용으로 인한 베임이 43.3%로 가장 많았다. <표 참조>

다음으로 하지정맥류 등의 근골격계 이상이 37.8%로 나타났다. 신체부위별 근골격계질환은 어깨(27.1%)가 가장 많았다. 이어 △허리(22%) △손목·손가락(14.3%) △팔·팔꿈치(11.2%) △무릎(9.4%) 등이 뒤따랐다.

건강이상에 대한 자극증상 조사에 따르면 ‘피로감을 많이 느낀다’는 응답이 85.5%로 가장 많았다. 또 대표적인 ‘여성직종’임에도 노동자들은 다양한 여성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4.3%는 자연유산을 경험했다. 몸이 붓거나(58.9%), 생리 불규칙 (44.6%) 등의 이상 증상도 호소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사고나 재해 등에 대한 대처방법에 대해 개인 실비처리(60.6%)와 개인보험(29.9%)으로 처리한다고 답해 대부분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31.7%에 불과했다. 또 61.9%는 사업장에서 제품 사용과 작업시술 관련 안전보건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해 안전보건교육의 제도적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미용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약 3천여종에 이르며, 이 중 30%는 독성물질로 분류됐다. 하지만 한국 미용 노동자들은 화학물질에 대해 적시한 안전보건자료(MSDS) 비치 여부에 대해 88.8%가 모른다고 답했다.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방치”

이는 열악한 작업환경에 기인한 탓이 크다. 미용업은 고속 성장한 대표 서비스 업종으로 약 20만명 이상의 이·미용업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관리 ·감독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방치돼 최소한의 노동 기본권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11%가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형태는 정규직이 33.2%, 비정규직 34.6%, 개인사업자 27.9%였다. 미용 노동자들은 절반 이상이 주 6일 근무에 하루 11시간가량을 일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대부분 5년 안에 그만두고 다른 분야의 일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미용업은 산업이 발달해도 기계화할 수 없는 인적 서비스 산업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노동이 동시에 요구된다. 또 유해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작업환경으로 인해 다양한 건강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나 정부와 사업주의 대책은 전무하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실태 발표와 함께 미용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제언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4대 보험 가입 의무화와 최저임금 준수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노희영 서경대 미용예술학과 학과장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에 가입시키는 것인데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60만원~80만원 안팎의 임금을 받다 보니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 한다”며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사업장내 법정 최저임금 준수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이 시급하다”고 당부했다.

또 노 학과장은 “미용 교육을 받는 교실에서부터 안전보건에 대한 수칙을 지키지 않다보니 노동자들이 위험한 사업장에서 일을 해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며 “노동자들이 교육 현장에서부터 안전한 곳에서 실습하고 이를 통해 안전의식을 기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질환에 대한 정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날 참석자들은 “현장에서는 ‘유산’에 대한 문제가 가장 흔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대책은 고사하고 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해 답답한 실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최경희 이화여자대학 의과대(예방의학) 교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임신 진료를 받은 건강한 여성들의 자연유산율은 1% 미만”이라며 “이 결과와 비교했을 때 4%를 넘는 미용업 노동자들의 자연유산율은 심각한 문제로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근로조건 개선 위한 정부 지원 절실”

다양한 산재 사례도 제시됐다. △샴푸·파마액 등을 맨손으로 접하다보니 손등이 거북이등 껍질이 되고 △손목 등의 인대가 늘어나 일을 포기하고 △화학물질이 눈에 튀어 시력을 잃는 등 미용 사업장에서는 다양한 재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유숙희 한국네일디자인협회 고문은 “노동자로서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일해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에 대한 안전의식이 미약하다보니 사고가 발생해도 ‘노화’에 따른 병으로 치부해 일도 건강도 다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와 사업주는 미용 노동자들이 위험 작업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노동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등 인식 전환교육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숙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본부장은 “이번 조사는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실시한 것으로 영세 사업장들을 조사하면 그 실태는 더 심각할 것”이라며 “정부는 기본적인 실태 파악부터 시작해 근로조건 개선과 함께 산업안전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도 지난 6월부터 헤어 미용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재해예방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업에서 산재가입 사업장 중 미용업 노동자의 차지 비중은 약 0.2%였으나, 재해가 점차 증가추세에 있다. 이에 노동부는 텐-텐 수칙(Safety & Health 10-10)이라는 안전 팸플릿을 발간해 오랜 시간 서서 일하는 작업자를 위한 건강관리 요령, 기타 건강장해 예방가이드 등을 담아 미용실에 배포하고 있다.

김정연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사무관은 “헤어를 중심으로 시작한 미용업 안전보건 캠페인을 다른 미용업종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며 “무엇보다도 미용업 종사자들이 스스로 근로자라는 인식을 갖고 4대 보험에 가입하는 등 기본적인 권리를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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