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제도는 스웨덴이 원조다. 스웨덴어로 이 제도는 대리자·대표자를 뜻한다. 사각지대에 처한 국민의 권리보호를 위해 국회가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은 1809년에 이 제도를 만들었다. 이어 핀란드·덴마크· 노르웨이도 잇따라 채택해 옴부즈맨제도는 북구유럽의 전통이 됐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프랑스·서독·미국도 이 제도를 채택했다.

옴부즈맨제도는 행정권 감시와 견제를 주목적으로 한다. 국회를 통해 임명된 조사관이 공무원의 권력남용 등을 조사·감시하는 제도다. 최근에는 공공행정을 촉진하는 기능으로 역할이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4년 옴부즈맨제도의 형식을 빌린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설립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국민권익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행정부 스스로가 잘못된 행정처분을 시정한다는 게 주목적인데 서구의 사례와는 다른 셈이다.

서울시가 도입한다는 명예시민노동옴부즈맨제도도 마찬가지다. 의회와 사법부가 행정권을 감시·견제한다는 이 제도의 전통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서울시가 제도 운용의 주체다. 단, 시민이 옴부즈맨으로서 역할을 하되 시는 일정부분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하는 모델이다. 감시대상은 지방행정이 아니라 ‘기업’이다. 목적도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처한 비정규직에 대한 권리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서울시는 노동옴부즈맨에게 1일 수당으로 5만원, 월 2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 내년 예산으로 6천여만원을 책정했다. 옴부즈맨들은 노동자들의 고충과 민원을 듣고 고용노동부에 전달하는 보조자 역할을 한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사법경찰권을 갖고 있는 근로감독관처럼 노동법 위반과 관련해 기업을 직접 조사하거나 처벌할 수 없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래서 근로감독관이 아닌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이다.

그런데 경영계가 서울시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옴부즈맨제도는 법적근거가 부족한데다 친노동계 인사로 이뤄져 객관성과 공정성이 없다”고 규정했다. 되레 “기업에게 이중 부담을 주는 불필요한 규제이자 노동부 권한에 대한 월권행위”라는 지적이다.

경총의 이런 지적은 지나칠뿐더러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천628명이던 근로감독관의 정원은 지난 8월 현재 1천577명으로 51명 감소했다. 현원은 더 줄어 1천453명에 불과하다. 반면 같은 기간 사업장 수는 10만 곳 이상이 늘어 근로감독관 1인당 담당하는 사업장수는 지난 2008년 1천99곳에서 올해 1천262곳으로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산업안전 감독관보다 고용관련 인력을 늘렸다. 근로감독관이 부족하자 체불임금 민간조정관제도, 근로기준 자율개선제 등 민간에 감독기능 일부를 넘기는 정책을 추진했다.

근로감독관은 슈퍼맨이 아니다. 1인당 1천개 이상의 기업을 감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갈등이나 분쟁이 있는 사업장, 민원이 제기된 사업장 외에는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소영세 사업장이나 비정규직들은 근로감독의 사각지대에 처한 셈이다. 이러니 노동부마저 미흡한 근로감독행정을 보완할 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미 노동부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명예고용평등감독관이라는 형태로 옴부즈맨제도를 시행해 왔다.

사정이 이렇다면 노동옴부즈맨을 두겠다는 서울시의 발표는 환영할 일이다. 한국경총과 같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나라당 이화수 의원 발의로 명예근로감독관 도입과 관련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을 봐도 그렇다. 명예근로감독관은 노동자로부터 노동법 위반 여부에 대한 의견을 듣고 근로감독관이 사업장 감독이나 조사를 벌일 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기류와 현실을 잘 아는 한국경총이 월권 논란을 제기했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한국경총의 요구는 노동권 사각지대를 방치하거나 용인해달라는 것에 다름없다. 그러면 이화수 의원이 낸 법안이나 노동부가 추진하는 근로감독기능 일부 민간이양도 비판해야 마땅하다. 노동옴부즈맨제도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면 근로감독관을 증원하라고 요구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그렇지 않고 박원순 서울시장만 겨냥했다면 건전한 비판은 아니다. 박원순 시장의 노동정책 전반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불필요한 시비를 거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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