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물산업 민영화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한동안 트위터를 떠돌았다. 볼리비아·미국 투자협정으로 인해 미국 물 기업 벡텔에게 볼리비아가 제소당한 사건이 구체적 예로 제시됐다. 정부는 이에 대해 부속서 II의 유보조항(음용수 처리·공급 서비스)을 근거로 물 민영화는 괴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런데 사실 지금 한국의 상수도 체계와 한미FTA 조항을 찬찬히 살펴보면 물 민영화가 정부 주장처럼 간단하게 유보되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미 수도법에서 다양한 형태로 민영화를 허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미FTA가 이를 극단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물 민영화를 꾸준하게 추진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상수도의 민간위탁을 허용한 2001년 수도법 개정이고, 2006년부터 현재까지 이름만 바꿔 계속 추진 중인 물산업 육성정책이다. 개정 수도법은 지자체가 관리·운영 중인 상수도를 공기업·민간기업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위탁할 수 있도록 하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16개 지방자치단체가 상수도 관리운영권을 외부 기업에 20~30년간 위탁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위탁정책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160개가 넘는 지자체가 각각 상수도를 운영하다 보니 기업이 이익을 낼 만한 시장규모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급수인구가 10만 내외인 중소규모 지자체의 상수도를 인수해 봤자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물산업 육성정책이다. 물 산업 육성정책은 163개 지자체의 상수도를 39개 권역별로 묶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이 과정에서 3~4개의 대형 물 기업이 상호 경쟁하게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민간위탁과 기업의 수익보장을 위한 지방상수도 통폐합, 이것이 바로 지난 10년간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일관되게 진행된 정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FTA는 정부의 수도 민영화 정책에 날개를 달아 주는 꼴인데, 지금까지 자본 규모상 한국수자원공사 외에는 상수도 민영화 시장에 뛰어들 기업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미FTA의 환경서비스 유보조항은 “사적 공급이 허용되는 한도에서 민간 당사자 간 계약에 따른 해당 서비스의 공급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단서조항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수도법이 허용하고 있는 위탁사업에 초국적 물 기업들이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FTA 이전에도 2006년 프랑스계 초국적 물 기업 베올리아가 인천시와 상수도 사업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도 있었다.

한미FTA 체결 이후에는 이러한 초국적 기업들이 단순히 한국에 진출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지자체 상수도 위탁사업을 주로 맡아 해 오던 한국수자원공사·환경관리공단 등의 공기업을 ISD(투자자-국가 제소) 조항으로 제소할 수도 있게 된다. 왜냐하면 ‘사적 공급이 허용되는 민간 계약’인 현행 상수도 위탁계약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초국적 기업의 내국민 대우를 어기는 불공정 경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미자유협정의 ISD 조항에 의거해서 캐나다 우체국이 정부 지원을 받으며 사업을 침해했다고 캐나다 우체국을 제소한 UPS 사례와 비슷하다.

캐나다 우체국과 UPS 분쟁은 7년에 걸친 소송 끝에 캐나다 우체국이 이겼지만, 한국수자원공사는 만약 소송이 진행된다면 캐나다 우체국보다도 훨씬 불리한 조건에 처할 것이다. 캐나다 우체국은 캐나다 국내에서 공공우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업무 성격이 중요한 승소 이유였지만 한국수자원공사는 세계 시장에서 보면 이미 초국적 물 기업들과 경쟁하는 민간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현재 12개 국가에서 14개 해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의 목표를 한국의 베올리아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만약 베올리아가 한국수자원공사를 제소한다면 한국수자원공사는 세계 물 시장에서 경쟁하는 민간기업인데,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지원하고 있는 꼴이 돼 버린다.

문제는 단지 지자체 상수도 위탁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자체 상수원이 없는 지자체에 독점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역할(광역상수도 운영)을 하고 있는데, 한미FTA 이후 이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한국 상수도 생산의 23%를 담당하는 한국수자원공사의 광역상수도 사업 역시 국제적 차원에서 민간기업처럼 영업을 하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이중적 성격으로 인해 제소당하지 말란 법이 없단 것이다. 현재 수도법에 따르면 광역상수도 운영은 국토해양부장관과 환경부장관의 인가를 받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러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업은 공기업인 한국수자원공사가 유일했지만, 이제 거대 자본을 가지고 내국민 대우를 주장하며 공기업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초국적 물 기업들이 들어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만들어 놓은 상수도 시장화 정책의 토대 위에 한미FTA가 더해져 이제 물 민영화는 단지 ‘괴담’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한국 상수도 체계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는 공기업의 공공성보다 해외 물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했으나, 자칫 초국적 물기업에 제소당할 수도 있는 처지가 됐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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