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죽음의 순번을 매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권지영 쌍용자동차가족대책위원회 대표의 말이다. 그는 “휴대전화가 고장나도 고칠 필요가 없을만큼 쌍용차 해고자들은 사회로부터 단절돼 있고, 무서운 속도로 가족 해체가 이뤄지고 있다”며 지난달 10일 두 자녀 곁에서 사망한 쌍용차 희망퇴직자의 부인 오아무개씨를 떠올렸다. 고인이 숨진 지 이틀이 되도록 돈 벌러 나간 남편 차아무개씨의 휴대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7일 오전 서울역 광장.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숨져간 노동자와 가족 19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서울역 주위를 오가는 행인들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하냐?”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무대에는 영정사진을 대신해 19명의 검은 얼굴 그림이 걸렸다. 무대를 향해 절을 하거나 헌화를 하는 이도 눈에 띈다.

금속노조가 주최한 이날 위령제에는 각계 관계자와 쌍용차 해고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김정우 쌍용차지부 지부장의 분향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김 지부장은 “지난 10~11월 두 달 사이에만 4명이 숨졌는데, 여기에는 재직자까지 포함돼 있다”며 “죽음의 그림자는 이미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고자나 재직자 모두 정리해고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해고자는 무기력감·우울감과 함께 생계난에 노출돼 있고, 재직자들은 해고자들에 대한 애증의 심경과 함께 높아진 노동강도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참여연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쌍용차 정리해고·무급휴직자의 95%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52%가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자살률은 일반 자살률에 비해 3.7%나 높다. 이들을 바라보는 가족들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9명의 사망자 중 3명이 퇴직자나 해고자의 부인이었다.

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정부나 회사측은 실효성 있는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평택시 차원에서 해고자 자녀들에게 중·고등학교 학자금을 지원하는 정도다. 회사는 “노사 합의에 따라 생산이 정상궤도에 올라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이 가능하면 그때 무급휴직자들을 복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할 뿐이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19명이 죽고 그 가족이 슬픔에 남겨졌을 때 국가는 그 곁에 없었다”며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정리해고를 없애고, 정리해고를 부추기는 한미FTA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령제를 마친 참가자들은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가는 ‘희망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리해고 사태를 매듭짓게 한 희망버스의 다음 행선지는 바로 쌍용차다. 참가자들은 공장 주변에 7동의 텐트를 설치하고 ‘희망텐트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절망과 죽음의 사이에서 위태롭게 희망을 이어가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희망의 발길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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