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정기훈

서울의 유일한 국가산업단지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가 20~30대 젊은 세대의 저임금 노동을 주요 동력으로 삼아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실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종사자 3천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 비정규직 비율은 52.0%로, 올해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나타난 전국 평균치(48.7%)보다 높았다.


◇압도적인 비정규직 비율=최근 10년 사이 서울디지털단지의 노동시장은 크게 달라졌다. 제조업의 비율이 줄고 출판정보서비스업과 전문과학기술업의 비율이 높아졌다. 직종으로 보면 사무직과 기술직의 비율이 늘었다. 여전히 제조업 취업자 비율(39%)이 가장 높지만, 전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사무·기술직이다. 세대별로는 20~30대 많아졌다.

서울디지털단지의 비정규직 비율은 52.0%, 상용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41.9%로 나타났다. 상용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활동조사의 전국 평균치(17.0%)보다 24.9%포인트나 높다. 비전형적인 고용형태가 만연해 있다는 의미다. 상용직 내 임시근로·한시근로·파견용역·시간제 비율 모두 경활조사 결과보다 2배 이상 높게 나왔다.

비정규직화 경향은 20~30대 젊은 세대에서 뚜렷했다. 서울디지털단지 내 새로운 노동시장을 대표하는 ‘생산자서비스업’의 20~30대 비정규직의 비율은 49.0%로, 경활조사 결과보다 12.2%포인트 높았다. 전통적 제조업 노동시장에 흡수된 것으로 보이는 20~30대 미숙련직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무려 80.4%에 달했다. 공단의 업종 고도화가 비정규직 남용, 특히 20~30대 젊은 세대의 비정규직화 확대와 함께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콜센터·창고물류기지·청소경비용역 노동자 등은 거의 100% 비정규직 형태로 유입됐다.


◇임금의 하향 평준화, 장시간 노동 초래=서울디지털산업단지 미숙련 노동자의 평균시급은 4천603원, 비정규직의 평균시급은 4천391원으로 조사됐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4천320원)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시급이 4천원도 안 되는 노동자도 13.8%나 됐다. 정규직의 임금수준도 하향 평준화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210만원, 월평균 임금이 300만원 이상이라는 응답은 13.2%에 머물렀다.

▲ 자료사진=정기훈
급여가 적으니 노동시간은 길었다. 조사에 응한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7시간이었다. 사업체노동력조사의 올해 4분기 평균(40.8시간)보다 6.2시간이나 길다.

법으로 금지돼 있는 52시간 초과노동 비율도 20.3%에 달했다. 제조업 생산직뿐 아니라 사무직과 기술직 모두 장시간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시간당 임금이 낮다 보니 법정 노동시간만 일해서는 소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한 잔업·특근이 만연해 있었다.

장시간 노동은 그 자체로 피로를 증가시키고, 휴식시간을 감소시켜 피로의 악순환을 낳는다. 작업 중 위험요인에 대한 노출시간도 연장시킨다. 이번 조사에서 전자업종 노동자의 경우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날이 한 달에 10일 이상인 경우는 65%, 20일 이상인 경우는 36%이었다. IT 사무직 노동자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임금체계와 노동시간의 상관관계도 발견됐다. 조사 결과 실적에 따라 급여를 받는 실적제 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이 51.5시간으로 가장 길었고, 연봉제 노동자(주당 48.1시간)가 뒤를 이었다. 시급제(주당 44.2시간)보다도 연봉제의 노동시간이 긴 것이다. 기술직·사무직 노동자의 주요한 임금체계인 연봉제가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생산직도·사무직도 근골격계질환 노출=
다양한 업종이 분포돼 있는 서울디지털단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안전보건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고전적인 위험요인인 소음·분진·유기용제뿐만 아니라, 단순 반복작업이나 정적인 자세에 따른 인간공학적 위험요인,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근무 스케줄에 따른 삶의 질 감소, 서비스업에서 관찰되는 감정노동도 관찰됐다.

특히 불규칙한 근무는 전자업종 생산직 노동자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다. 생산주기가 짧고 생산 속도가 빠른 제조업 특성상 당일 주문량에 따라 연장근무가 결정되는데, 실제 조사 대상 전자업종 노동자의 51%는 “매주 근무시간과 근무일수가 불규칙하다”고 답했다.

▲ 자료사진=정기훈
근무시간의 변경이 발생하는 경우 “당일 또는 하루 전에 통보”가 이뤄진다는 응답도 85%에 달했다. 불규칙한 근무는 삶의 질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전자업종 노동자의 약 55%가 “일과 삶의 균형이 나쁘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 반복작업이나 정적인 자세에서 장시간 컴퓨터를 다루는 일도 노동자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서울디지털단지 전자업종 생산직 노동자들의 작업은 단순 반복작업이다. 전자업종 노동자의 40% 이상이 1분 미만의 사이클로 돌아가는 반복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반복작업의 지속은 목·어깨·팔 부위 근골격계 증상과 질환을 초래한다. 실제 정적인 자세로 장시간 컴퓨터 작업을 수행하는 IT 사무직 노동자들도 근골격계 증상을 호소했다.

하지만 사업장 내 안전보건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안전보건 교육 및 사업장 내 위험정보 제공 여부를 확인한 결과 응답자의 30%만이 현 사업장에서 안전보건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34%만이 사업장 내 위험 정보를 제공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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