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고용불안은 두 번째 문제였죠. 당시엔 우리가 열심히 일한 회사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컸어요. 젊음을 바친 일터를 지켜야 되겠다는 생각에 노조를 만든 거죠.”

속옷 전문 생산기업 좋은사람들에 노조가 생긴 것은 지난 2008년 9월. 회사 설립 이후 1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강기용 초대 지회장을 거쳐 지금은 사무장 출신 문경주 지회장(37·사진)이 지회를 이끌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동교동 지회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문 지회장은 노조 설립 과정에 대해 “투기자본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요약했다.

알려진 것처럼 좋은사람들은 93년 당시 유명 개그맨이었던 주병진씨가 설립한 회사다. 사실상 주씨 1인 기업으로 운영됐고, “노조가 생기면 회사 문 닫는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씨가 2008년 6월 ETS라는 정체불명의 회사에 270억원을 받고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상황이 변했다.

“인수자가 페이퍼컴퍼니였습니다. 알고 보니 인수 한 달 전에 만들었더군요. 자본금도 5천만원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도 신한증권이나 투자조합에서 충당했어요.”

조합원들은 그해 9월 지회를 설립하고 화학섬유노조에 가입했다. 급하게 추진했지만 당시 전체 직원 430여명 중 70% 이상이 지회에 가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ETS는 좋은사람들을 인수한 후 곧바로 지앤지인베스트라는 투자사에 회사를 팔았다.

문 지회장은 “불과 4개월 사이 최대 주주가 두 번이나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며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고용승계·단체협상 체결·노조활동 인정 등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다행스런 것은 새로운 인수자가 경영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지앤지인베스트는 캄보디아와 홍콩에 생산공장과 판매법인을 설립했다. 리바이스 등 미국 유명 상표를 사들여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여느 사용자처럼 노조활동을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지회의 강력한 요구로 고용승계와 함께 노조의 기본적인 활동이 보장됐다.

그러자 시선이 외부로 향했다. 지회는 설립 첫해부터 해마다 연말이 되면 연탄을 때는 저소득층 밀집지역을 찾아 연탄 나르기 행사를 진행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노조의 주요 역할 중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조합원에게 배분되는 성과급을 계약직이나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회는 노사협의를 통해 지난해부터 당기순이익의 일정 부분을 성과급으로 받도록 했다. 지회는 조합원이 아닌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젊고 신생조직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설립 취지에 따라 운영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노동자 지위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조합원과 비조합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구분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회사를 움직이고 이윤을 창출한 이면에는 그들의 땀도 섞여 있으니까요. 당연히 나눠 가져야죠.”

지회는 매년 임금협상에서 비정규직의 임금인상도 요구하고 있다. 노사협의회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도 앞장선다. 그 결과 지회 설립 이후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판매직 비정규 노동자 20여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문 지회장은 “올해가 임기 첫해인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올해 초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회사가 실질 연봉제 도입을 추진해 논란이 됐다. 기존 급여체계 역시 연봉제이긴 했지만 평가요소가 거의 없었다. 회사는 올해 3월 신입사원들을 포함한 몇몇 직원들의 의사를 앞세워 직급 통폐합과 세부 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연봉제를 시행한다고 슬그머니 알려왔다.

문 지회장은 “회사가 제시한 평가 항목을 봤는데 근속연수가 길고 직급이 높은 조합원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회의 반발로 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예상이다. 앞으로 ‘성과’라는 무형의 전리품을 다투는 싸움터로 조합원들을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그의 책임이 됐다. 큰 틀에선 막 싹이 돋아난 신생조직의 뿌리를 다지는 의무도 부여돼 있다.

“평소에 ‘~같은’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얘기죠. 부족한 것도 아쉬운 것도 많은 한 해였습니다. 지회장이 흔들리면 조직 전체가 흔들린다는 생각에 부담감도 많았죠. 올해 부족했던 것을 거울 삼아 조직을 다질 생각입니다. '노조 같은 노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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