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대전충청지부)

A는 해고자다. 지난해 3월 징계 해고돼 길거리로 나앉았으니 언제 끝날지 모를 해고자 생활만 벌써 1년8개월째다. 평생 모아 어렵게 장만한 보금자리는 그 사이 가족의 생계 때문에 전세로 바뀌어 버렸고, 얼마 전부터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통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A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실시하는 온갖 공모에 응시해 여러 차례 표창도 받았다. 사내 마라톤동호회에서 활동하며 크고 작은 마라톤대회에 회사 이름을 큼지막하게 써 붙이고 열심히도 달렸다. 일이 고되기는 했지만 직장생활을 나름대로 알차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고가 났다. 절친했던 동료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A는 고인이 된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자며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검은 리본을 나눠 줬다. 가슴에 달았으면 좋겠다면서. 그런데 A는 그날 평생 있지 못할 경험을 했다. 회사 관리자들이 검은 리본을 모두 빼앗고, 회사의 승인 없이 사내에서 집단행동을 했다며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저의가 무엇인지 추궁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 한 가족임을 누누이 강조해 왔던 회사가 고인이 된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려는 지극히 순수한 행동에 보인 반응을 A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뒤로 A는 자신의 주위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아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동료가 죽은 이유가 새삼 궁금해졌고, 그 동료를 죽게 만든 이유로 또 다른 많은 동료들이 죽어 갔음도 알게 됐다. 그 전에 알지 못했던, 아니 굳이 알려 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아프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죽음의 이유들을 찾아내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A는 그것이 이미 떠나가 버린 동료와 언제 떠날지 모를 동료들에 대해 자신이 응당 갚아야 할 부채라고 생각했다.

A는 그 죽음의 원인들이 근본적으로 자신과 동료들이 일하고 있는 노동환경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수년간 온갖 노력을 다 했다. 노동부도 찾아가고, 동료들의 산재 신청도 돕고, 지역의 노동·시민단체들과 더불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키는 노력도 꾸준히 했다. 결국 그러한 노력이 모여 사업장의 노동환경이 대단히 유해한 상태에 있음이 밝혀졌고,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A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징계사유로 돌변했다. 회사는 A를 기약 없는 해고자로 만들고 말았다. 당연히 A는 법적 구제절차에 따라 복직싸움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회사는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하지 않는 행위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비견될 수 있다면서 열악한 노동환경에 책임 있는 자들을 적극 비호했다. 반면에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한 A의 행위는 노동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순한 저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깎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노동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은 모두 회사의 주장을 배척하고 A에 대한 징계해고 처분은 부당한 징계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회사는 여전히 A를 원직에 복직시킬 의사가 없어 보인다. 최근에 고법에 항소를 한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항소를 하면서 A에게 "1인 시위를 하지 않으면 일찍 복직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회사가 A를 복직시키지 않은 채 수년간 해고자로 내몰고 있는 ‘저의’는 결국 A의 노동환경 개선 노력을 중단시키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A는 회사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한국타이어는 여전히 노동환경 개선의 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달아 보지도 못한 검은 리본을 아직 떼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A는 당분간 팍팍한 해고자의 삶을 계속 이어 가야 한다. 그래도 해고자 A의 표정은 여전히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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