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

1. 2011년도 이제 한 달 남았다. 민주노총은 ‘한미FTA 날치기 무효! 이명박 퇴진!’ 투쟁지침 제1호를 내려 보냈다. 지금 민주노총이라는 이 나라 노동운동의 기관차는 한미 FTA투쟁으로 달리고 있다. 이대로 민주노총은 남은 2011년을 질주할 것이다. 정권퇴진 투쟁으로 달려갈 것이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라는 중요한 정치일정이 있으니 민주노총은 더욱 가속도를 붙여서 질주해 갈 것이다. 한국노총도 정치일정이라는 선로를 타고 달려갈 것이다. 야권연대든, 정책연대든 뭐가 됐든 총선과 대선이라는 권력자 선출행위에서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질주할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2012년의 정치일정에 따라 이미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전개되고 있다. 그러니 이 나라 노동운동사에서 2011년 마지막 한 달은 2012년의 또 다른 한 달이라고 새겨질 것이다.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 나라 노동운동은 달리고 있는 것이니까. 그래야, 정치일정을 타고 가야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운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 왔으니. 그래서 2012년은 새롭지 않다. 2012년이라고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런 2012년은 이 나라 노동운동에서 수도 없이 있어 왔다. 한나라당 정권교체라는 구호는 이 나라 노동운동사에서는 낡은 구호가 된 지 오래다.



2. 그렇다면 이 나라 노동운동의 기관차는 그동안 이런 정치일정을 타고 가면서 어떤 노동자 권리를 확보해 왔던 것일까. 야권연대나 집권당과의 정책연대 속에서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 나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단지 법과 협약, 그리고 노동현실을 통해서 그것을 평가할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구체적인 노동자권리는 이것을 통해 확보되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한번 보자. 개별 노동자의 권리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자보호법과 협약으로 확보된다. 이미 정규직보다도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해 낸 파견법·기간제법 등 비정규직법까지 살필 것 없이 근로자 일반에 대한 보호법인 근로기준법 내용을 보자.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임금·근로시간·취업규칙 등이 주요 내용이다.

법은 계약직 등 비정규직 근로계약 체결을 제한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협약에서는 이것을 제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운동은 지금 엄청난 규모의 비정규직 양산을 막지 못했다. 법은 해고의 정당성을 규정하고 있으나 해고를 실제로 제한하고 있지 못하다. 당연퇴직 제도나 취업규칙에 의한 해고사유 명시·희망퇴직·명예퇴직·권고사직 등 합의해지 제도의 악용 등 이 나라 노동자는 사용자의 해고자유로 고통 받고 있다. 그렇다고 노조가 협약으로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도 못하다. 법은 정리해고 제한규정을 통해 정리해고를 도입했고, 판례는 해석을 통해 사용자에게 광범위한 정리해고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런데 정리해고를 제한하기 위한 제대로 된 협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근로계약의 체결에서 종료까지 노동자권리는 법도 협약도 제대로 보장돼 있지 않다.

임금제도는 임금·평균임금·통상임금 등에 의해 이 나라 노동자들은 농락당하고 있다. 임금은 법과 판례·행정해석에 의해서 노동자가 근로를 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지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금품은 임금이 아니라고 하고, 그래서 평균임금에서 제외한다. 임금이라 해도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해서 자신의 근로에 따라 지급받아야 할 임금인 법정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협약은 이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과연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근로시간만을 근로하는 노동자가 이 나라에서 얼마나 될까. 법이 정한 초과근로에 대한 근로자동의는 현실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법이 금지한 초과근로가 행해지는 교대제가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1953년, 이후 수십년간 이 나라 대표기업들에서 행해져 왔다. 사무직이라고 해서 소정근로시간대로 근로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법은 이 나라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규제하고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조가 이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위법한 교대제를 합의해 줘서 노동자를 장시간노동에 몰아넣어 왔다.

이 나라 노동자는 근로계약에 의해서 사용자와의 근로조건 등에 관해 합의하고서 근로하고 있지 못하다. 계약자유라면 당연히 합의로 그 내용을 정해야 함에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할 뿐이다.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 제도가 그것이다. 근로조건 기준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변경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했다.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주인으로 노동자에 군림할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무를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이 자신의 권리로 설정할 자유를 가진 자는 주인이고 다른 사람은 노예다. 그런데도 협약은 이 취업규칙을 제대로 제한하고 있지 못하다. 심지어는 협약사항까지도 취업규칙에서 정하도록 위임하는 사례가 수도 없다.

집단적 노동자의 권리라는 노동기본권의 행사는 어떤가. 이 나라 노동자는 오랫동안 복수노조 설립금지 제도로 노조설립을 제한받아 왔다. 그런데 이것이 폐지됐음에도 지금 이 나라 노동자는 노조설립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 노조가입률 10% 미만이 그것을 말해 준다. 법이 자유를 주었으니 단결권 행사가 보장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노조의 설립과 가입이 금지된 노동자가 존재하고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통해서 사실상 단결권 행사가 제한되고 있다. 그리고 법이 아니라도 이 나라에서 노조는 불온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용자의 탄압에 노동자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앞에서 살펴본 개별 노동자권리가 법과 협약에 의해서 제대로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는 사업장에서 자신의 권력을 통해 노동자의 노조 조직과 가입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조는 이에 제대로 대응하고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협약을 통해서 일정한 범위의 노동자에 대한 노조의 가입을 제한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로 노조의 단체교섭권 행사가 제한·금지되고 있다. 단체교섭의 대상은 근로조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법과 판례에 의해서 제한받고 있다. 협약은 그 범위 내에서 체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도 판례에 의해서 그 효력을 제한받고 있다. 합의·동의 등 협약의 노동자권리 보장을 위한 노조의 개입 장치는 법원의 판례에 의해서 부정되기 일쑤다. 그런데도 이 대응한 협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협약은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권리장전으로서 노동자의 사업장 근로 전반을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법은 쟁의행위의 주체·목적·절차·수단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쟁의행위는 정당하기가 어렵다. 행정규제를 넘어서 사용자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게 된다. 그런데 이에 대응해 쟁의권 확보를 위한 협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 노동자가 이러니 아예 쟁의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다.

참담한 지경이다. 이것이 이 나라 노동운동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대로 말해 준다. 도대체 이 나라 노동운동의 기관차는 무엇을 위해서 달려왔다는 것인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 앞에 어떤 권리를 확보했노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해마다 총파업·총력투쟁을 전개하고, 통합과 연대로 줄기차게 달려왔건만 노동자권리는 제대로 확보된 게 없다.



3.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노동자의 운동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조직체는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자의 기관차다. 만약 이 기관차가 노동자권리를 향해서 달려가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자신이 탑승해야 할 기관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이 나라에서 노조 조직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면 이런 것이 아닌지, 적어도 이 나라 노동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노동운동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노동운동이 정치일정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당연히 정치일정을 살피고 그 시기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해서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노동운동은 총선·대선 등 정치일정에서 확보해야 할 노동자의 구체적인 권리목록을 요구로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노동운동은 이 나라의 정치세력을 정치일정에서 자신과 통합하고 연대할 수 있는 대상인지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거꾸로 통합과 연대를 위해서 노동운동이 확보해야 할 노동자의 권리목록을 고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권리목록은 위에서 살펴본 노동자 일반의 권리 확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차별받는 특수한 예외적인 노동자의 권리들로 권리목록을 채워서는 안 된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아니라도 그저 양심적인 시민운동과 시민계급에 기반한 정치세력이 내세우는 것이고 그것이 노동운동의 요구여서는 노동운동이 그 시민운동과 정치세력에 갇히는 것이다. 지금 이미 이 나라 노동운동의 기관차는 2012년 정치일정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그 정치일정에서 확보해야 할 노동자의 권리목록을 작성해서 자신의 요구로 노동운동은 질주해야 한다. 그러면 이 나라 노동운동사에서 2012년에는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수 있다. 그래야 수십년 노동운동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권리에 관한 법·협약 등이 이 모양이냐고 비난받은 일이 앞으로는 없게 될 것이다. 보다 많은 정치세력이 함께하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목록을 제한해서 내세운다면 결국 노동운동이 자신의 권리가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서 달리고 있다는 걸 이 나라 노동자는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노동운동이 경계해야 한다. 노동자가 노동자권리가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이 나라 노동운동이 노동자에게는 노동자의 기관차가 아니다. 노동운동에서 탈선한 폭주기관차일 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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