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미 기자


“저렇게 많은 열차를 못 타게 한 것이 광만이를 죽음으로 내몬 것 같습니다. 해고라는 불명예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딱 한 번만이라도 저 사진처럼 환하게 웃는 동생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대전 한국철도공사 옆. 두 손을 모으고 수줍게 웃고 있는 고 허광만(38) 전 철도노조 부곡기관차승무지부장의 사진이 영결식 무대 위에 말없이 걸려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조합원 2천여명은 슬픔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날 허 전 지부장의 영결식이 철도노동조합장으로 치러졌다. 그는 지난 21일 오전 자택에서 조합원들에게 ‘고마웠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누나는 “광만이는 기관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다”며 “다시 태어나도 기관사가 되고 싶다고 늘 말했다”고 전했다. 허 전 지부장은 94년 철도청 청량리기관차사무소에 임용돼 2006년 부곡기관차 승무사업소로 전입했다. 전입한 지 1년도 안 돼 이듬해 3월 부곡기관차승무지부 부지부장을 맡았고, 2009년 지부장이 됐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부터 열차를 운전할 수 없었다. 2009년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1월 징계해고됐기 때문이다. 해고된 이후에도 서울지방본부 조직국장을 맡았다. 동료들은 "해고된 본인보다도 징계된 조합원들을 더 걱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고마웠다' 한마디 남기고…

이영익 철도노조 위원장은 “‘위원장님’하며 다가와 손 모아 인사하고 수줍게 웃어 주던 그 사람이 동지들에게 ‘고마웠다’는 한 마디를 남긴 채 모든 것을 주면서 떠났다”며 “해고는 살인이라 외치면서 해고노동자 허광만 동지의 아픔을 보듬어 주지 못한 우리를 어찌 민주노조라 할 수 있겠느냐”고 흐느꼈다.

철도 기관사인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조 민주화 활동을 하던 2000년 봄 어느 때 허 전 지부장을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했다.

“무엇이 베테랑 허광만 기관사를 어렵고 외롭게 만들었습니까. 가장 무능한 허준영 때문입니까. 파업을 유도하고 노조를 파괴하려고 했던 저들의 비열한 꼼수 때문입니까. 2000년 봄날 허 동지가 따뜻한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동지에게 손을 내밀지 못해 미안합니다. MB 정권을 끝장내지 못한 제가 죄인입니다.”

엄길용 노조 서울지방본부장은 허 전 지부장이 숨지기 직전 그와 통화를 했다. 허 전 지부장은 엄 본부장에게 '여행 좀 다녀오고 싶다. 잠 좀 푹 자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 본부장에게 유언 같은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형 같이 못해서 미안해. 부모님께 미안하다고 전해 줘. 조합원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얘기해. 어머니,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꼭 얘기해 줘."


"고인의 염원은 해고자 원직복직"

김상노 철도노조 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대표는 “광만이는 저를 아빠라고 부르고 철해투 총무에게는 엄마라고 부를 만큼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동지였다”며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하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참석자들은 허 전 지부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해고자 원직복직을 쟁취할 것을 결의했다. 이상무 공공운수연맹 위원장은 “해고된 공공기관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투쟁하지 왜 가슴이 뭉그러져 홀연히 떠나갔느냐”며 “이제 우리가 앞장서 원직복직과 명예회복을 쟁취하겠다”고 말했다. 김진애 민주당 의원은 “지켜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며 “2009년 철도파업이 합법이었다는 진실규명과 철도해고노동자의 명예회복, 부당한 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조합원 1만2천명을 징계하고 200명을 해고하는 것은 문명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MB 정권의 노동탄압과 허준영을 가슴에 분노로 새기고 되갚아 주자”고 강조했다. 허 전 지부장의 동료였던 한태경 노조 운전국장은 조합원들에게 “허광만 동지를 다시 열차에 탈 수 있게 해 주자”고 말하며 고인의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 조합원들은 허준영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공사를 항의방문하려 했으나 경찰에 저지당했다. 경찰은 이날 공사로 진입하려는 조합원들에게 최루액을 쐈다. 조합원들은 2시간에 걸친 영결식을 마친 후 공사에서 대전 중앙로네거리까지 행진했다.

노조는 다음달 5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전국 주요역에서 대국민 선전전을 실시한다. 노조는 공사의 공식 사과와 원직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철해투는 대전 공사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인다.

다시 태어나도 기관사가 되고 싶다던 허 전 지부장은 끝내 열차에 다시 오르지 못한 채 이날 경기도 마석모란공원에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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