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고노동자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철도조합원 고 허광만 동지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철도공사의 노조무력화 시도와 일방적인 노동조건 개악시도에 맞서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파업 당시 부곡승무지부의 지부장이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해고를 당한 뒤에는 ‘해고로 인한 스트레스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해고가 부른 사회적 타살

부고를 전해 듣자마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퍼뜩 떠올랐다. 잔인한 해고가 불러온 고인의 죽음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연속된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정말 해고는 살인이구나’ 무의식 중에 중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감정이 복잡했다.
장례식장은 입구부터 영안실까지 철도조합원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철도노조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그렇게 유심히 본 적이 있었던가. 낯익은 얼굴들, 낯선 얼굴들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이 죽음이 또다시 연속되지 않도록 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마음만 무거웠다.
조합원들의 표정도 비슷해 보였다. 고인을 지켜 주지 못하고 외롭게 보낸 죄책감과 또 다른 어느 동지가 어딘가에서 외롭게 죽음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느낌이었다.
노조는 고인의 명예회복(해고 철회)과 철도공사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 묵묵부답인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장례식장에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사과도, 교섭도, 조문도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안면몰수하는 철도공사의 경영진은 ‘도의적 책임’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걸까. 아니면 고인의 죽음 자체를 철도공사와 무관한 것으로 치부하고 조용히 덮으려는 고도의 술책일까.
사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철도공사의 책임은 그저 도의적 책임만 지면 되는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조차 느끼는 못하는 철도공사를 보고 있자니 할 말을 잃게 된다.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MB 정부와 공사

부인할 수 없다.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철도공사의 ‘묻지마 해고’였고, 그런 철도공사를 노사관계 선진화의 모범으로 표창한 이명박 정부다.
2009년 철도파업은 절차와 수단에 있어 모두 합법적인 파업이었다. 파업의 목적 또한 철도공사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개악과 노동조건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파업 초기 정부를 포함해 그 누구도 함부로 불법파업이라 규정하지 못했던 정당한 파업이었다.
그러나 파업투쟁의 장기화가 예상되고 철도 운영에 실질적 저해가 발생하기 시작하자 정부는 돌연 불법파업으로 단정했다. 그리고 철도공사는 작심한 듯 무려 1만2천여명의 조합원을 징계하고, 192명을 해고했다. 그 뒤 철도공사는 무더기 해고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조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뜻도 모를 ‘법과 원칙’을 거론하며 이를 부추기고 있다.

제2, 제3의 죽음 막아야

고인은 해고 이후 동료들에게 “형 차 타고 싶어 미치겠어”라고 말하곤 했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단순히 직장을 빼앗는 것을 넘어 그가 살아온 삶 자체를 박탈하는 극단적 처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해고로 삶을 박탈당한 어느 노동자가 세상을 등질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해고에 의한 사회적 살인이 연속되지 않도록 정부와 철도공사는 해고자 전원 복직 등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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