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대전충청지부)

노동자 P씨는 용역업체에 입사해 공공기관으로부터 도급받은 운전업무를 담당하다가 2009년 6월15일 해고됐다.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는 P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행정법원은 공공기관과 용역업체 간 불법파견 관계 및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P씨는 험난한 여정 끝에 올해 6월30일 대법원으로부터 확정판결을 받았다. 필자는 P씨가 해고자의 삶을 살며 가장 먼저 문을 두드렸던 노동위원회 얘기를 하려고 한다.

초심 지방노동위원회는 P씨와 대리인이 ‘불법파견에 대한 현장조사’를 요청했으나 공익위원들은 조사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억지 춘향’ 식으로 조사관이 따라오긴 했으나 그는 조사를 마치고도 직권조사보고서를 쓰지 않았다. 대신 P씨의 이유서에 쓰라며 구두로 조사내용을 불러 줬다.

같은 비정규 노동자 사건임에도 최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대량징계 사건에서 제한적이나마 심판을 담당하는 위원들이 참여해 현장조사가 이뤄진 것과 대조적이다. 노조가 없는 노동자는 그렇게 서럽다. 이 사건은 비정규직법 시행 2년 즈음해 공공기관들이 앞장서 파견·용역 노동자들을 교체 사용함으로써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하고자 했던 2009년도의 현실(소위 비정규직 돌려막기)을 그대로 반영했던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노동위 공익위원들은 이를 외면했다.

지방노동위의 한 공익위원은 당일 심문회의에서 원청 사용자를 질타했다. “공공기관이 법을 어기면 되나, 법을 잘 지켜야지”하고 말이다. 질타하는 척하고는 뒤돌아서서 노동자의 신청을 비웃었으리라 생각하니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게다가 어찌된 일이지 노동자측에서 제출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의 사건기록들이 심문회의 하루 전까지도 위원노사마루(노동위원회 전자메일업무 시스템)를 통해 위원들에게 제대로 송부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불법파견 여부를 가려야 하는 복잡한 사건의 방대한 기록과 입증서류들이 법리에 대한 기초적인 전문성도 없는 공익위원들에게 심문기일 하루 전까지도 송부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누가 그 판정을 신뢰할 수 있는가. P씨는 지방노동위에 이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으나, 담당 조사관은 사과는커녕 “내 책임이 아니다”고 발뺌하며 오히려 법대로 해 보라고 큰소리를 쳤다.

파견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의 설움을 법에라도 호소해 보겠다고 나선 P씨의 눈에 비친 노동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신의 직무유기를 은폐하기에 급급한 공무원들과 노동 문제에는 관심도, 전문성도 없는 공익위원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노동자 탄압기구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힘없는 노동자에게 부당한 판정과 무시로 일관하던 노동위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자 ‘중노위 브리프(소식지)’에 떡하니 우리 사건을 소개했다. 그마저도 ‘각하’를 ‘기각’으로 잘못 기재했을 뿐 아니라 지노위의 부당한 판정 때문에 한 노동자가 암흑과도 같은 기나긴 터널에서 이제야 빠져나왔는데도 자신들이 내린 부당한 판정에 대한 평가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노동위는 조정사건에 대해 “조정성립률이 상승했다”며 “이는 위원회별 현장조정활동 활성화 등 적극적인 조정서비스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었다.

P씨는 올해 6월30일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던 날 내게 전화해 이렇게 물었다.

“노동위원회의 사과를 받아 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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