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동운동은 정체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라고 해봐야 노조운동인데 노조 조직률은 이제 한 자릿수가 됐다. 정체가 아니라 쇠퇴라고 말해야겠다. 그런데도 노조는 인기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정당 등 진보정당의 운명을 결정짓게 됐다. 민주노총이 기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방침을 유지할 것인지가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통합연대를 합친 통합진보정당의 운명을 결정하게 됐다. 그리고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에서 벗어나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등이 추진하는 ‘민주진보진영의 통합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참여하기로 했다.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이 나라 노조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도대체 노동운동은 정체인데도 노조의 인기는 소통합이든 대통합이든 어디서든 상종가를 치는 것은 왜일까.


2. 이에 대한 답이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을 말해줄 것이다. 통합진보정당으로의 소통합이든,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대통합이든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통합의 대상이 됐다. 권력의 자리와 집권을 위한 세력 결집의 대상이 우리의 노조인 것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세력에게 노조는 표로 보이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해서 조직적 결의로 창당됐다. 그 뒤 일부가 진보신당으로 분열했다가 그 진보신당 중 일부세력이었던 통합연대에다 유시민의 국민참여당까지 통합된다. 창당 당시에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곧 민주노동당의 방침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통합진보정당의 방침이 되기 어렵게 됐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국민참여당 세력까지 포함한 통합진보정당의 통합 유지를 위해서 그 수준을 낮추지 않는다면 그렇다. 이런 조건에서는 민주노총이 통합진보정당의 노선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합진보정당이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결정짓게 될 수 있다. 그러니 민주노총은 통합진보정당이라는 소통합의 주체가 아니라 그 대상으로 전락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대통합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여하는 한국노총은 아예 자신의 정치방침을 이 야권 대통합으로 출범할 정당, 세력의 방침으로 정할 지위에 있지 못하다. 그러니 야권 대통합의 주체가 아닌 대상인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렇게 이 나라 노조는 제 정치세력의 통합의 대상이 됐다. 이것은 지금 노동운동이 이들 정치세력에 통합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3.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노동자의 운동이다. 노동자권리는 자본에 맞선 투쟁을 통해서 확보된다. 물론 국가법질서 내에서 권력을 통해서도 확보될 수 있다. 이것을 종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으로 구별해 말해왔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노동자권리가 국가법질서내로 통합됐다. 최저임금법·비정규직법·근로기준법 등 노동자의 근로조건의 기준을 국가의 법으로 정해두고 있다.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법률로 정해두고 있다. 이미 노동자·노조·노동운동은 자본주의국가법질서내로 통합돼 버렸다. 노동문제는 권력이 관리하는 국가의 일이 된지 오래다. 노동부 등 행정권력, 경찰과 검찰, 법원 등 사법권력, 국회 등 입법권력까지 온갖 권력기관이 관여하고 심지어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임단투까지도 행정기관은 일상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그러니 경제투쟁은 경제투쟁에 머물 수가 없고 정치투쟁일 수밖에 없게 됐다. 투쟁이 법제도투쟁이라고 해서 정치투쟁인 것이고 임금 등 단협투쟁이라고 해서 경제투쟁일 수 없다. 이것이 지금 이 세상의 질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투쟁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으로 더 이상 가를 수가 없다. 자본이든 권력이든 어떠한 노동자의 투쟁이든 결국은 경제투쟁이면서 정치투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서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투쟁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운동이다. 유성기업의 교대제투쟁,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투쟁은 모두 경제투쟁이었다. 그러나 한 사업장 노사의 투쟁에 노동부와 경찰·검찰·법원, 그리고 국회까지 국가기관이 관여했었다.


4. 그동안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정치투쟁을 위해, 노동자를 위한 입법투쟁을 위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왔다. 단지 독자적 정치세력화냐 아니냐만 달랐다. 노동자를 대변할 새 정당을 만들거나 기존 정당과 연대함으로써 국가수준에서 정치방침으로서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고 지키고자 했다. 이것은 노조가 할 수 없는 영역이고, 정당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보았으므로 그와 같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제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는 노동자권리를 위해서는 노조는 일상적으로 정치투쟁을 하는 노동자단체일 수밖에 없게 됐다. 실제로 지금까지 이 나라 노조는 그와 같이 해 왔다. 사업장투쟁이 발생하면 승리를 위해서 그렇게 해 왔다. 그런데 노동자권리의 확보와 유지를 위한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지금 소통합, 대통합에 참여하는 제 계급, 세력은 어떠한 입장을 갖고 있는가. 자본과 이해가 대립되는 노동자투쟁을 옹호할 것인가. 주야간 맞교대제를 폐지하자는 데까지는 국민참여당의 유시민도 지지할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주야간 맞교대제는 근로기준법조차도 위반인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동부조차도 실태조사해서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단순히 야간노동 철폐만을 외친다면 그 자의 외침이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요구라고 볼 수 없다. 그건 이미 법으로 노동자권리로 확보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급 지급받고 있는 임금의 삭감 없이 주간에 소정근로시간만 일할 수 있는 근무형태를 도입하자고 한다면. 그러면 더 이상 국민참여당의 유시민도 노동부도 혁신과 통합의 민주당세력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근무형태에서만 이런 것이 아니다.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모든 투쟁에서 기존 국가법질서로 확보된 것을 넘어서 노동과 자본의 이해가 대립되는 때에는 그렇다. 그때 통합됐으니 옹호해달라고 사정해 봐야 소용이 없다. 이것은 단순히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투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노동자로 하지 않는 정당 세력에게 이걸 지지해 달라 사정하는 것은 그들의 지지기반을 내놓고 노동자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노동자권리는 노동자를 제외하고 누구도 그것을 확보해 주지 않는다. 아무리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계급이고 세력일지라도 그렇다. 물론 특정시기에 특수한 상황에서는 노동자 아닌 어떤 계급, 세력이 노동자권리를 옹호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기에 그 상황에서 그 계급, 세력이 노동자를 자신을 위해 동원할 필요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때에도 노동자권리는 자신의 계급, 세력의 이해에 본질적으로 반하지 않아야 한다. 그때만이다. 그러니 지금 이 나라에서 국민참여당까지 포함한 소통합이나 민주당까지 포함한 대통합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이 요구하는 노동자권리가 그 통합 내로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이 통합의 대상으로 됐다는 것은 현 시기 노동운동의 목표인 노동자권리의 확보가 그 통합의 범위내로 머문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통합추진의 논의와 방식은 노동운동의 정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만약 노동운동이 통합을 위해서 그 요구를 낮추어 현 시기 운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을 통합에 바치는 짓이다.


5. 지금 소통합이든 대통합이든 통합은 권력을 위한 것이다.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통합정당 내지 통합세력에 의해서 확보되는 자리는 그 통합을 전제로 한 것이다.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노동운동의 목표를 낮추고서 한 통합이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제대로 노동자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통합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러면 그때는 노동자권리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은 선택해야 한다. 노동자를 대변해서 통합으로 획득한 자리를 내놓을 것이냐, 아니면 자리를 위해 더 이상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을 것이냐. 물론 그때 노동자권리 말고 더 큰 대의를 내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권리를 위한 이 나라 노동운동 앞에서는 변명일 수밖에 없다. 그 변명은 결국 노동자권리보다도 더 우월한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는 그 우월한 무엇의 대변자일 순 있어도 더 이상 노동자의 대변자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정치세력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 질문을 던질 수 없기에 노동운동은 지금 통합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욕망을 낱낱이 들추어내서 이것을 노동자권리로 확보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이 노동운동이다. 그런데도 이런 질문조차도 던질 수가 없다면 그것은 이 나라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욕망을 권리로 요구하고 투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욕망을 권리로 요구로 하지 않아서 노동자들은 무엇이 자신들의 권리로 확보해야 하는지 모르고 단지 자본과 권력이 자신의 권리라고 인정해주는 것만 자신의 권리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노동자는 단체협약과 법만이 자신의 권리로 보인다. 자신들이 확보해야 할 권리는 보지 못한다. 노동자 욕망의 빈곤은 노동자권리의 빈곤을 초래한다. 노동운동의 정체는 노동자욕망의 정체를 부르고 이것은 다시 노동운동의 정체를 가져왔다. 여기에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정체인데 통합에서는 상종가를 치는 이유가 있다. 노동운동이 주체로서 서지 못하고 단지 통합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상종가를 치고 있다고 환호해서는 안 된다. 거래의 대상만이 상종가를 친다. 노동운동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거래할 주체로 서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