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례/ 2011카합782 단체교섭응낙가처분


유상철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필·
노노모 부회장)

Ⅰ. 사실관계 및 사건경과

한국수자원공사와 청소용역계약을 체결한 아태산업개발 소속 시설·청소 노동자들로 조직된 노조(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수자원공사지회)는 2011년 3월28일부터 수차례에 걸쳐 한국수자원공사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하청 노동자들과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며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한국수자원공사와 아태산업개발은 청소 및 시설관리 도급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설관리 및 청소용역 계약특수조건을 규정하며 용역에 관한 제반사항을 감독하고 관리하며 포괄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감독원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감독원을 통해 인원배치 및 근무인원 조정, 휴가사용자 수 제한, 재활용품 분리수거 수익금을 귀속시키되 필요시 포상비·복리후생비 사용, 회사 외부지역의 물품운반 행사지원 등 작업지시 등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과업 지시서를 통해 아태산업개발 소속 노동자들의 작업 일시, 작업 장소, 작업 내용 등에 관해 실질적·구체적인 결정을 했고 지하 휴게시설에 TV케이블 및 전화케이블·개인옷장·냉장고 등을 설치해 줬다.

이에 따라 노조는 폐지처분, 휴게공간 개선, 노조 사무실 제공, 연장근로 조정, 정년연장, 업무범위 조정 등에 대해 한국수자원공사가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단체교섭응낙가처분 신청을 했다.


Ⅱ. 쟁점정리 : 원청사용자의 단체교섭 응낙의무 인정

노조법상 사용자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제2조 제2호). 그러나 단체교섭 당사자로서 사용자에는 사업주만 해당하고, 사업의 경영담당자와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는 단체교섭 담당자의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단체교섭의 당사자가 되는 사용자를 노동자와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자’, 즉 노동자와 사이에 그를 지휘·감독하면서 그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로 보고 있다.1)

그러나 대전지법에서는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라 함은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로서의 사용자에 한정하지 않고 비록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단체교섭의 당사자로서의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청업체-하청업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와 같은 용역·도급계약에서 직접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원청 사용자라 하더라도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당연히 응해야 하는 사용자로서 의무를 확인시켜준 판결로 노조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보다 폭넓게 인정한 판결이다. 더불어 원청 사용자의 실질적인 권한 정도에 따라 단체교섭 대상에 해당되는지 여부도 함께 판단한 판결이다.


Ⅲ. 판결의 의미

1. 원청 사용자의 하청용역업체 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응낙 의무 인정

노동현장에서 원청 사업주는 하청 노동자와 근로계약관계가 없기 때문에 제3자라며 단체교섭도 거부하고 노조 활동을 제약하며, 하청업체를 앞세워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하청 노동자와 직접적으로 근로계약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하청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근로조건·노조활동 등 노동관계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위치에 있다면 원청 사업주는 최소한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견해다.

과거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 노조가 생기자 순차적으로 도급계약 해지 등으로 사내하청업체를 폐업하거나 해당 사업부문을 폐쇄하는 방식을 통해 현대중공업이 개입해 하청업체 조합원들을 해고한 사건이 있었다. 대법원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근로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권한과 책임을 일정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조를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이에 개입하는 등으로 법 제81조 제4호의 소정의 행위를 했다면 그 시정을 명하는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현대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인정했다. 이 판결을 통해 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불법파견·위장도급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라도 구조상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노조활동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대표적 사례다.

학설은 원청 사업주가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사용자 책임을 지게 된다면 당연히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로서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서 단체교섭 당사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고 있다. 대상판결의 경우 이와 같은 이유에서 원청사용자에 대해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단체교섭 당사자의 지위에 대한 판단에 있어 단체교섭의 의무가 있는 교섭 사항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원청 사용자가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해 결정할 수 있는 근로조건 등에 관한 사항이라면 당연히 원청 사용자가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에 있다고 할 것이다.


2. 원청 사용자의 단체교섭 의무와 단체교섭 사항

대상판결은 원청 사용자의 단체교섭 당사자의 지위를 인정하며, “채무자 아태산업개발 소속 근로자에 대해 적어도 별지 목록 제1호항(폐지처분), 제2항(휴게공간 개선), 제3항(노조 사무실 제공), 제4항(연장근로 조정), 제6항(업무범위 조정)”에 관해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직접 고용관계가 없는 아태산업개발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임금·정년 등의 직접고용과 관련된 사항은 단체교섭의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단체교섭 사항에는 ① 원청사업주가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예를 들면 원청 사업주 소유의 장소나 시설을 사용하는 노조 활동, 원청 사업주의 후생복지시설의 공동 사용, 근로시간과 휴게, 산업안전보건 사항 등) ②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예를 들면 하청업체 작업공간에서의 노조 활동, 인사 관련 사항) ③ 원청 사업주가 부분적 사용자로서 우월적 지위에서 하청업체와 공동으로 결정하게 되는 사항(임금·고용보장·휴가·근무시간 중 노조 활동, 노조 전임자의 유급 노조 활동, 후생복지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위 ①과 ③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해는 원청 사업주도 실질적인 결정에 관여하는 것이므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고 원청 사업주와의 단체교섭 대상 사항에 포함된다고 볼 것이다. 나아가 원청 사업주가 우월적인 지위에서 하청업체가 공동으로 결정하는 사안의 경우에는 공동으로 교섭에 응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다.2)

대법원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아태산업개발과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특수조건으로 제14조 1항에서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 만 59세 이하 종업원으로 배치해야 한다(단 근무를 성실히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채무자가 인정할 때에는 예외로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로 제5항(정년연장)에 대해 단체교섭의무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년에 관한 사항이 직접고용과 관련된 사항이라 하더라도 이 사건의 경우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라기보다는 계약특수조건을 통해 원청사용자가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는 측면에서 단체교섭의무 대상으로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한 판결까지는 이뤄지지 않아 못내 아쉽다.


Ⅳ. 맺음말

청소 노동자들이 외치는 “직거래하라”는 구호가 있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 외치는 “진짜 사장이 고용해”라는 구호가 있다.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주요 업무에 대해 당연히 사용자가 직접 고용하는 것이 맞다. 동일한 사업장에서 동일한 일을 하는데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의 임금·근로계약 관계가 다르고, 동일한 사업장에서 수년 동안 일을 하고 있는데 용역업체가 변경되면 근로계약 또한 새롭게 입찰된 업체로 변경되는 등 이러한 애매한 법률적 관계는 간접고용이 유지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간접고용을 통해 파생되는 각종 복잡·다양한 법률적 쟁점은 간접고용의 폐지를 통해 가장 손쉽게 정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1) 대법원 1995.12.12. 선고 95누3565 판결
2)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질라라비」‘원청사용자성 인정’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의 내용과 의미(권두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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