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1년 11월13일 서울광장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1월13일 즈음해서 민주노총이 해마다 개최하는 노동자대회다. 올해는 ‘한미FTA 저지,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11 전국노동자대회’였다. 수만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위원장의 선창에 따라 외쳤다. 한미FTA 저지하자, 전태일 열사 정신을 계승해 한미FTA 저지하자고 외쳤다. 그리고 주최측이 작성한 결의문대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노동기본권을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구체적으로 내년 6월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과 노동 관련법 전면 재개정’을 위한 투쟁을 결의했다. 11월13일은 이렇게 노동자들이 외치고 결의한 날이었다. 이날 태양은 서울광장 노동자들에게 내리쬐고 있었다.


2.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 전태일이 있었다. 노총도 위원장도 전태일에게서 너무 멀리 있었다. 무엇보다도 전태일이 함께 할 수 있는 노조도 동지도 아니었다. 노동조합이라는 이름도 제대로 달지 못한 평화시장의 노동자들 몇몇이 그가 함께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나 노동자 전태일은 혼자라도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아무도 따라 외치지 않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래도 전태일은 외쳐야 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는 어떠한 결의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이 이미 타들어갔으므로 어머니 이소선에게 다짐받고자 했다.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이뤄 주세요. 오직 어머니 이소선만 다짐할 수 있었다. 그날 11월13일은 이렇게 전태일이 외치고 어머니 이소선이 다짐한 날이었다. 그날 태양은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3. 11월13일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은 결의했다. 오늘은 한미FTA 저지투쟁을 하고, 내일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노동기본권을 되찾는 투쟁을 하기로 결의했다. 이것을 조합원들에게 외치고 다짐하도록 했다. 민주노총이 결의한 내일의 투쟁은 이 나라 노동자의 내일을 좌우할 수 있다. 그러니 그건 이 나라 노동자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집권 한나라당정권의 재집권 저지는 친자본의 정권이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상투적인 구호이고 결의라고 볼 수도 있다. 어차피 노동자정권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렇다면 노동자정권 이것이 무리라면 왜 친노동의 정권 수립을 내걸고 결의하지 않은 걸까. ‘진보’ 민주정권이란 표현이 친노동 정권을 말하는 것인가. 진보가 노동일 수 없는 이 나라에서 친자본의 정당과 야권연대 해서 정권교체한다고 친노동 정권이 수립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의 주된 조직적 역량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왜 그저 한나라당정권의 재집권 저지라는 야권의 상투적인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상투적인 구호라도 얼마든지 외칠 수 있다. 한나라당정권의 재집권을 저지하면 그것이 이 나라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것이 노동운동의 전진이라면. 그런데 한나라당의 재집권 저지뿐이다. 2011년 11월13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공식적인 구호는 그랬다. 이날 그리고, 즉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노동기본권을 되찾는 투쟁을 하겠다고 결의했다. 노동기본권을 되찾겠다? 언제 이 나라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확보했다가 그걸 잃어버렸다는 것인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노동기본권을 되찾겠다고 한다면 노무현 정권까지는 보장되던 노동기본권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 빼앗겼다는 것인데 그게 무엇일까. 정리해고법은 이미 김영삼 정권 때 근로기준법에 들어와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수많은 사업장에서 자행됐던 것이다. 파견법도 마찬가지고, 기간제법은 노무현 정권 때 제정돼서 시행돼온 것이니 비정규직법도 아니다. 더구나 이런 건 노동자권리에 관한 것이니 노동기본권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럼 노조 전임자급여 금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에 관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이명박 정권에서 개정, 시행된 것인데 이걸 두고 말하는 것인가. 이건 노무현 정권 때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으로 입법을 추진했던 것이다. 어쨌든 유보됐던 것이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 시행되고 입법됐으니 빼앗겼다고, 그러니 그걸 되찾겠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고작 이걸 두고서 민주노총이 빼앗긴 노동기본권을 되찾겠다고 다짐한다는 것인가. 2012년 총선·대선에서 여소야대가 확정적이고 정권 교체가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장담하고서 고작 이 나라 노동자는 이걸 확보하자고 서울광장에서 수만명이 모여서 결의해야 했다. 2011년 11월13일 서울광장의 태양은 이 나라 노동자에겐 너무 소심하게 내리쬐었다.


4. 노동운동은 아무리 상황을 탓하고 과정과 경로가 어떻다고 해도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노동운동이 노동자권리를 내세우지 않으면 노동자를 운동에 조직할 수도 없고 노동운동에 조직된 대오를 제대로 투쟁에 나서게 할 수도 없다. 이럴 경우 그 노동운동의 대표자는 노동자 없이 대표의 대외적 활동이 운동인 양 전락하고 만다. 그러면 노동자는 대표자의 활동을 지지하는 대상이 되고 만다. 이때는 대표자가 자신의 활동이 향해지는 방향이 운동의 방향이라고 외치고 노동자에게 이를 따라 외치고 다짐하라고 할 뿐이다. 대표자가 아무리 노동자상태가 열악하다 어떻다 하고, 아무리 노동자권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말해도 그것으로는 노동운동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이 어떠한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해서 투쟁하겠다는 것인지 대표자가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가지고서 그 노동운동이 어떤 것인지, 그 대표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2011년 11월13일 이 나라 노동운동은 이명박 정권 아래서 빼앗긴 노동기본권을 되찾겠다고 하고, 구체적으로 내년 6월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과 노동 관련법 전면 재개정’을 위한 투쟁을 하겠다고 결의했다. 대표자를 따라서 다짐했다. 노동기본권을 되찾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앞에서 보았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 빼앗긴 노동자의 권리를 한꺼번에 되찾기 위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과 노동 관련법 전면 재개정의 요구를 들고 내년 6월 총파업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 빼앗긴 노동자의 권리라고 함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작’이다. 노동운동이 이 나라 노동자에게 그걸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하라고 하기에는 너무 왜소한 요구다. 지금 이 나라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해서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빼앗긴 것이 아니라 본래 노동자의 권리로 노동기본권으로 확보하지 못한 것을 요구해서 쟁취해야 한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그걸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 아래서 빼앗긴 노동자권리와 노동기본권 확보를 요구하고 이걸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한다면 이 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 확보를 향해서 곧장 전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슨 이유이든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나라 노동자는 지금도, 10여년 전에도, 20여년 전에도, 그리고 41년 전 전태일의 날에도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보장받지 못했다. 제대로 된 노동자권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명박 정권,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노태우와 전두환 정권,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서도 노동자권리 앞에서는 노동운동의 목표가 다를 수가 없다. 그런데 그걸 아니라고, 노동자권리만 주장할 게 아니라고, 더 큰 대의가 있다고 그게 우선이라고 대표자가 외치고, 그것을 노동자에게 따라 외치라고 해왔던 것이 아닐까. 노동기본권의 행사조차도 보장받지 못한 지금 이 나라 노동현실은 그걸 말해준다.


5.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노동자의 운동이어야 한다. 노동자권리를 쟁취해 주는 자가 따로 있고 노동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자가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해 활동하고 노동자는 그 활동의 결과로 권리를 확보하는 운동이 아니다. 대표자가 태양이고 노동자는 그 내리쬐는 빛을 받는 자들이 아니다. 그게 노동자를 위한 운동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노동운동일 수는 없다. 그러니 1970년 11월13일 노동자 전태일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대표자의 활동으로 전락하고 종국에는 노동운동이 아니게 된다. 노동운동에서는 노동자들 스스로 태양으로 빛나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가 주인되는 거창한 미래는 아닐지라도, 그처럼 고대하고 있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승리가 노동자권리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에게 노동자권리를 알도록 해줘야 하고, 노동자가 노동자권리를 적극적으로 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2년 11월13일에는 어떤 태양이 내리쬘 것인가.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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