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전태일 열사의 41주기를 기념해 열린 전국노동자대회를 하루 앞두고 지난 12일 저녁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한바탕 축제가 펼쳐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노동자들은 이날 하루 춤과 노래에 맞춰 잠시나마 시름을 잊었다.

○…삼삼오오 모여 먹으니 더 맛있네

아무래도 축제에 먹을거리가 빠지면 섭섭하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노동자들은 군데군데 모여 앉아 근처 노점에서 사온 번데기·어묵·찐빵 등을 호호 불어가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던 중 건장한 남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맥주 있어요.” 금속노조 대우자동차판매지회 조합원들은 흰 비닐봉지에 맥주캔 세 개와 오징어 한 마리를 담아 1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하나밖에 팔지 못했다는 앳돼 보이는 한 노동자는 “선배들한테 혼나겠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행사장 입구 쪽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 ‘투쟁 고구마’도 눈길을 끌었다. 판매자는 새시대예술연합. 이 단체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인 조직이다. 장기투쟁 사업장을 찾아 마술·연극·전시회 등의 문화행사를 펼친다. 홍경희 기획단장은 “지난해에는 1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며 “아직 돈을 세 보진 않았지만 지난해만큼 분위기가 좋다”고 귀띔했다.

○…포복절도 구호에 현장은 웃음바다

노동의 시름을 벗어던진 간만의 축제지만 마냥 놀(?) 수만은 없는 법. 이날 행사에선 재치있고 기발한 투쟁구호가 참가자들을 배꼽잡게 했다. “이명박을 점지하신 삼신할매 각성하라”, “업무태만 근무태만 저승사자 각성하라”, “4대강 삽질 전에 니귀부터 먼저 파라”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구호들은 다음날 노동자대회에서 활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신나고 짜릿한 연대공연

전야제에는 이동식 밴드 공연팀이 등장해 기타와 탬버린과 멜로디언을 연주하며 각 투쟁 사업장에 맞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이들은 제주도 강정마을 상주 활동가들로 구성된 신짜꽃밴(신나고 짜릿한 꽃 밴드)이었다. 신짜꽃밴의 멤버이자 평화활동가인 조약골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에 여러 투쟁 사업장에서 연대하러 와 줘서 감사한 마음도 전하고 이번엔 우리가 힘을 드리고자 오늘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며 “강정마을도 오래 비워 둘 수가 없어 노동자대회가 끝나면 바로 내려가야 하지만 연대공연은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좋은 선생님 되기 어렵지 않아요~"

13일 노동자대회 사전대회로 전교조가 주최한 전국교사대회에서는 전교조 문예실천단의 공연이 눈길을 끌었다. 실천단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을 패러디한 공연을 선보였다. 유치원 학생이 던진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진학상담 선생님이 해답을 줬다.

“좋은 선생님 되기 어렵지 않아요. 교사가 되면 할 일이 아주 조금 있는데, 담임·수업·공문 작성·통계 내기·각종 문서 처리·시범학습 등 이렇게 간단한 것만 하면 돼요. 아침부터 화장실도 가지 않고 일만 하면 정시에 퇴근할 수 있어요. 일제고사 때문에 고민이라고요? 부진아만 없애면 돼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을 숨만 쉬게 하고 문제만 풀게 하면 돼요. 그럼 상담할 시간이 없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이런 선생님과 상담하고 싶지 않아 해요. 그럼 이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인재를 만들어 봐요.”

양우람·윤자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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