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완성자동차 노사의 담합을 질타하고 나섰다. “완성차 노사가 주야 2교대제를 개선하는 데 양보와 실천을 하지 않고 근로시간을 늘려 수당을 독식하고 있다. 고용창출과 시설투자를 게을리 하는 담합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장관은 노사발전재단이 9일 주최한 ‘자동차산업 지속가능발전 토론회’에서 이 같은 발언을 했다. 이 장관의 주장은 일리 있는 부분도 있다. 완성차업계의 장시간 노동은 ‘팔 수 있을 때 많이 팔자’는 기업의 이해와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자’는 노동자의 정서가 영합한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관의 이런 판단은 사태의 핵심에서 한참 비켜나 있다.

노동부가 6일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5개사 노동자는 주당 평균 55시간 이상 일을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주의 소정근로(40시간) 외에 연장근로(12시간)를 제한하고 있지만 완성차업계에선 있으나 마나였던 셈이다. 국내 완성차 노동자는 연간 평균 2천400시간 이상 일하는데 이는 외국보다 약 800시간 더 긴 것이다.

완성차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유는 시급제 방식의 임금체계 탓이다.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32%에 불과하고 변동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러다 보니 완성차 노동자들은 연장근로에 따른 잔업수당에 기대고 있다. 완성차 노동자의 봉급표를 보면 휴일근로수당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휴일에 근무하면 임금이 할증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휴일 주간근무는 통상임금의 150~300%, 야간근무는 300~350%를 받는다. 노동자들이 휴일근로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동자들은 생명을 좀 먹는 줄 알면서도 야간노동과 휴일근로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장시간 노동체제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 제한을 어겼을 경우 벌칙조항으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정부는 형식적 단속과 권고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완성차업계에서 불법적인 연장근로가 이뤄져도 정부가 강력하게 규제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다. 게다가 노동부는 ‘휴일근로는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내려 사실상 장시간 근로를 용인했다. 이렇듯 불법 연장근로가 판치는 완성차업계의 관행은 정부가 방치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완성차업계의 장시간 근로를 노사의 담합 탓으로 돌리는 이 장관의 주장은 궁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정부는 내년에 연간근로시간을 1천950시간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고용없는 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해야만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판단이다. 최근 노동부의 실태조사와 이 장관의 발언을 보면 장시간 노동의 온상인 완성차업계의 관행 개선을 우선과제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 노동부는 완성차업계에 교대제 개선을 촉구해 왔다. 이는 야간노동 폐지와 주간연속 2교대제를 논의하고 있는 완성차 노사의 단체교섭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이젠 노사에게만 공을 돌리지 말고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우선 노동부는 불법 연장근로를 하는 완성차업체에 대해 법대로 사법처리 해야 한다. 과거처럼 연장근로를 용인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면 완성차업계의 오랜 관행을 개선할 수 없다. 아울러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와 별개라는 잘못된 행정해석을 폐기해야 한다. 이미 노사발전재단 토론회에서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기준법상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여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초과근로 개념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토론회에서 노동부는 법 개정 사항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장기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다간 노동시간 단축을 말로만 떠들고 실천에는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잘못된 행정해석을 폐기하고 불법 연장근로만 근절해도 산술적으로 약 5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노동부는 적극적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연간노동시간은 줄이고, 일자리는 늘릴 수 있다. 밤에는 자고, 휴일에는 가족과 지낼 수 있는 노동관행도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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