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제공

허권(47·사진) 금융노조 농협중앙회지부 위원장은 지난 9월 당선된 뒤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었다. 안팎으로 일이 많았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농협의 신용·경제사업 분리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경분리를 위한 지원금을 당초 예상보다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상적인 신경분리가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초유의 전산마비 사태와, 신경분리를 막지 못해 책임론이 불거졌던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연임을 시도하면서 농협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허 위원장은 취임식도 하기 전에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점 마당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해야 했다. 그는 "내년 3월로 예정된 농협의 신용·경제사업 분리를 연기하고, 최원병 회장의 연임을 막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11일 오전 농협중앙회 본점 마당에 설치된 천막농성장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허 위원장은 “현재 상태라면 내년에 농협의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가 출범하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오죽하면 신경분리 법안이 통과되고 나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국회의원들이 신경분리를 유보하자면서 농협법 재개정을 추진하겠냐”고 반문했다.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농협 구조개편에 드는 비용은 27조원이다. 농협중앙회가 확보하고 있는 돈은 15조원. 지난 3월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 부족한 12조원에 대해 농협과 정부가 절반씩 조달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6조원에서 2조원이 삭감된 4조원만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삭감된 금액은 농민 지원과 직결되는 경제사업에 쓸 돈이었다.

“농협의 신경분리는 원래 신용사업에 치중되는 것을 방지하고 경제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법안이 통과되고 나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부족한 돈을 어떻게든 마련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게 된다. 12조원이나 되는 돈을 차입을 통해 마련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농민들과 농협 노동자들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허 위원장의 생각이다.

“빚잔치를 해서 지주회사가 출범하면 어떻게 될까요. 협동조합 체제에 비해 성과를 중요시하는 게 지주회사입니다. 빚을 갚기 위해 쥐어짜면서 농업인들에게 돌아갈 실익은 줄어들고, 직원들은 고용불안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허 위원장은 “신경분리를 아예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며 “최소한 농협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2017년까지 유보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협중앙회지부는 12일 오후 서울역에서 민주노총 소속 전국농협노조·NH농협중앙회노조(옛 축협중앙회노조) 등과 함께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300만 농어민 실익을 위한 농협노동자 총진군대회’를 개최한다.

“농협 노동자들은 농민에 대한 애정이 많아요. 현장에서는 금융업무를 보는 직원들까지 농산품을 보다 많이 팔려고 등짐을 지고 땀흘리면서 일합니다. 신경분리 법안이 처음에 통과될 당시에는 상황을 몰랐던 직원들이 이제 신경분리의 위험성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허 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사용자대표인 최원병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농협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최 회장을 후보로서 법적인 자격에 문제가 있다며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한 상태다.

“2009년 10월 농협은 대의원대회를 열어 신경분리와 관련해 자체안을 마련했어요. 최 회장은 당시 무슨 일이 있어도 농협안을 관철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부안대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겁니다. 그래 놓고 다시 회장을 하겠답니다. 최 회장은 자격이 없습니다.”

허 위원장은 “경영진들조차 한목소리로 농협 신경분리 유보에 동의하고 있다”며 “농협노동자들과 농민들, 새 경영진, 국민들과 함께 꼭 농협법 재개정을 이뤄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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