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노동자가 자본가를 이기기 위해서는 자본가보다 전략적이어야 한다. 자본가는 곳간에 쌓아 둔 자본으로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에서 나오는 노동력뿐인 노동자는 자본가만큼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해 고의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며 노동자들이 자본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자신들끼리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도록 유도한다. 노동자들 간의 경쟁으로 노조가 약화되고, 노동조건이 악화되면 생산량 감소로 본 손해는 짧은 시간 안에 회복되고, 중장기적으로 자본가는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 올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한진중공업과 최근 노조가 조직된 르노삼성이 대표적 예다.

조남호 한진중 회장은 영도조선소의 선박 수주가 없어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고 이야기했으나 실상은 영도조선소 물량을 인위적으로 줄이고, 필리핀 수빅조선소 가동률을 높인 것이었다. 조 회장은 영도조선소에 선박 수주가 없다고 했으나, 선박 수주는 한진중공업이 발주자와 계약해 어느 조선소에서 생산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지, 영도조선소와 수빅조선소가 경쟁을 해 계약을 따 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본은 이러한 사정을 모두 알고 있다. 단적인 예로 한진중은 언론을 통해 마치 회사가 위기에 처해 어쩔 수 없이 정리해고를 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올해 8월 2천억원의 무보증사채를 이자율 5.25%의 저리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메리츠·우리·키움증권 등 10개의 대형 증권회사들이 이를 모두 인수했다. 한마디로 금융기관들은 수년간 한진중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한진중 경영은 조남호와 증권회사들 사이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조남호와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사이에서는 1년 내내 문제였다. 다른 이유는 없다. 오직 조 회장이 영도조선소의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를 한번 손보겠다고 덤볐기 때문이다.

르노삼성도 비슷하다. 르노삼성은 최근 10월 들어 잔업·특근을 줄이고, 현장 관리자들을 통해 공장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식의 소문을 노동자들에게 퍼트리고 있다. 르노삼성 생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르노삼성은 올해 10월까지 22만대를 생산했는데 이는 르노삼성이 가장 많은 차를 생산한 지난해와 비슷한 수치다. 르노삼성은 9월까지 지난해보다 더 많은 차를 만들어 놓고 10월에 약간의 물량 조절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장에 고용불안을 야기할 각종 루머를 확산시키고,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비용을 절약해야 한다며 장갑 한 장까지 아끼라는 식으로 현장을 옥죄고 있다. 르노삼성 경영진의 속셈 역시 간단하다. 지난 8월 출범한 금속노조 로노삼성지회에 대해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다. 8월 출범해 본격적인 현장 조직화에 들어간 금속노조를 고립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강성 노조에 가입하면 회사가 더 어려워진다는 위력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2009년 경제위기 과정에서 경영진의 탐욕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물량을 줄이고, 경영위기설을 퍼트렸다. 금호타이어와 지엠대우(현 한국지엠)가 대표적이다. 금호타이어는 2009년 박씨 일가가 금호그룹 차원에서 무리한 인수합병을 자행하다 일시적인 재무위기에 빠져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타이어가 부도날 위기라며 노조에 임금삭감과 정리해고, 일부 공정의 외주화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사측의 이러한 협박에 위축됐고, 사측 요구의 상당수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사실 금호타이어에는 박 회장의 지분 문제를 제외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금호타이어는 세계 경제위기로 약간의 판매 감소가 있었을 뿐이었고, 이마저도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모두 회복했다. 박 회장의 전략은 위기를 과장해 노조를 무릎 꿇리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킨 다음, 그 이익을 채권단에 대한 경영권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했던 것이다. 올해 상황을 보면 결국 박 회장은 경영권을 지켰고, 채권단은 빚을 상환받은 반면 노동자만 임금을 잃었다.

지엠대우는 경제위기 와중에도 차를 팔아 매년 2천억원 이상의 이익을 냈지만 2008~2009년 2조원 가까운 금융손실로 기업이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지엠대우의 수출은 전량 지엠 계열사들을 통해 진행된다. 금융거래로 인한 이익과 손해는 제로섬 게임으로 누군가 잃으면 반대편에서 이득을 보게 돼 있는데, 결국 경제위기 기간 2조원 가까이 지엠 본사를 비롯한 계열회사들이 이득을 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본 유출을 해놓은 경영진은 노동자들에게 지엠의 글로벌 전략이 판매지에서 생산하는 것이라며 내수를 늘리지 않으면 철수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고용에 위기를 느낀 노조는 투쟁 대신 직접 영업홍보지를 시민들에게 나눠 줬고, 임금과 노동조건은 크게 후퇴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내수가 아주 약간 늘었을 뿐이었음에도 공장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으며, 오히려 과도한 노동강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년에 걸쳐 이익을 생각하는 자본은 당장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노조를 약화시키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경제위기 같은 명분이라도 있을 때에는 더욱 과감히 이러한 전략적 선택을 한다. 노동자들이 자본의 이러한 협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 역시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투쟁을 통해 노조가 쉽사리 협박에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고, 노동자들끼리 물량과 고용을 둘러싼 경쟁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단결과 연대로 뭉쳐야 한다. 해고자와 함께 하는 노조를 세우고, 희망버스와 같은 사회적 연대로 경영진의 노조탄압을 막아 낸 한진중 투쟁은 노동자들이 가야 할 그 길을 부족하게나마 보여 줬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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