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대리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가세했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국내 완성차업체 5곳의 근로시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업체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천400시간을 웃돈다.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연간 800시간 이상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장 시간 노동국가’라는 부끄러운 꼬리표도 여전하다.

문용문(46·사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 당선자는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정부가 노사 간 대화의 장을 주선해 타협의 여지를 찾도록 물꼬를 터야한다”고 말했다. 지부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협상을 벌일 수 있도록 정부가 다리를 놓아 달라는 뜻이다.

문 당선자는 “일한 시간만큼 돈을 더 버는 시급제 임금구조, 연장근로와 특근에 대한 높은 할증률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일의 노예가 되게 만들었다”며 “하지만 ‘안정적인 월급제가 도입되면 급여가 일부 줄더라도 교대제 개편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조합원이 57%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협상을 통해 절충점을 찾을 여지는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9일 오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문 당선자를 만났다.


“조합원들은 민주도 실리도 원한다”

- 이달 4일 치러진 2차 투표에서 3기 지부장인 이경훈 후보를 누르고 역전승했다

“조합원들의 저력으로 다시 민주노조를 일으켜 세워 기쁘다. 지부 집행부가 회사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조합원들의 바람이 담긴 결과라고 생각한다.”

- 1차 투표와 2차 투표의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조합원들이 어느 특정 후보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지는 않은 것 같다.

“조합원들은 민주노조도 원하고 실리도 원한다. 그러한 정서가 반영됐다고 본다. 실리주의는 노동자들에게 허상을 심어 주기 때문에 안 좋은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노조를 하자는 게 실리와 무관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공약은 비슷했다. 누가,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관건이다.”

- 1·2차 투표 모두 판매-정비 조합원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는 데 실패했다. 금속노조의 ‘기업지부의 지역지부 개편’ 방침을 계승하고 있고, 이 문제에 반대해 온 판매-정비 조합원들의 정서가 표심으로 나타난 것 같은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조직개편 문제와 관련해 금속노조의 발전전략이 유연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당초 조직개편 문제가 제기된 배경은 강력한 조직력과 계급적 단결을 위한 조직체계를 그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장의 조직력이 무너지고 있고, 노사협조주의와 실리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지금은 현장 조직력을 추스르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런 차원에서 조직형식 논란을 당분간 중단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 조직의 역량을 다른 곳에 집중하자는 말인가.

“자동차 업종교섭을 제안한다. 주간연속 2교대제·비정규직 문제·발암물질 문제 등을 한데 모아 자동차공업협회와 업종교섭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교섭 성사 가능성도 높고, 산별정신을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정부 노동시간 근절 노력 환영”

- 최근 고용노동부가 국내 완성차업체 5곳의 근로시간 실태조사 결과를 내놨다. 5곳 모두 근로기준법을 어기고 연장근로를 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은 환영할 일이다. 장시간 노동과 심야노동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병폐다. 최장 시간 노동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근무형태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정부가 노사 간 대화의 장을 주선해 타협의 여지를 찾도록 물꼬를 터야 한다. 지부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협상을 벌일 수 있도록 정부가 다리를 놓아 달라.”

 

▲ 정기훈 기자

- 현대차 노사의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는 ‘임금과 물량’의 함정에 빠져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이 줄어도 임금은 그대로’를 요구하고, 회사는 ‘현재의 생산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임금을 보존하겠다’는 입장이다.

“일한 시간만큼 돈을 더 버는 시급제 임금구조, 연장근로와 특근에 대한 높은 할증률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일의 노예가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안정적인 월급제가 도입되면 급여가 일부 줄더라도 교대제 개편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조합원이 57%에 달한다. 협상을 통해 절충점을 찾을 여지는 충분하다.”

-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의 공동투쟁을 통한 주간연속 2교대제 2012년 전면시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실현 가능한가.

“올해 유성기업 사태를 지켜보며 단위노조의 각개약진으로는 교대제 개편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최근 새로 당선된 배재정 기아차지부장과 이런 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두 지부 집행부의 인수인계 절차가 마무리되면 배 지부장을 만나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두 지부의 행보를 기대해도 좋다.”

- 지난 3년간 무파업이 이어졌고, 회사는 무파업에 대한 보상으로 직원들에게 주식을 지급했다. 현장에서는 '무파업 주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주식 지급을 무파업의 대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부는 매년 전년도 당기순이익의 30%를 성과로 분배하라고 요구해 왔다. 주식을 포함한 성과급 총액은 이에 못 미치는 것이다. 사실상 무분규에 대한 인센티브는 전혀 없었던 셈이다.”

- 새 집행부도 회사로부터 주식을 따낼 계획인가.

“회사가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매년 최고 이익을 갱신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분배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순이익에 대한 공정한 분배를 요구할 것이다. 그 형식이 반드시 주식일 필요는 없다. 조합원들의 뜻에 따르겠다.”


“비정규직 문제 남의 일 아니다”

- 현재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가 꼬여 있다. 지난해 12월 공장 점거농성 이후 사내하청지회는 대규모 징계해고를 겪었고, 내부 재정비리 등이 겹치면서 집행부 구성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어디서부터 풀어 나갈 것인가.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불법파견이다. 회사가 불법적 고용으로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것이 법원 판결의 요지다. 정몽구 회장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사내하청지회의 활동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노조법 위반이다. 해고자 지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조합원으로 간주하는 것이 법원의 일반적인 판례이자 보편적인 상식이다.”

-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현대차 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는 과거 ‘1사 1조직’ 투표 부결로 확인된 바 있다.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10년 전만 해도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조합원에게 생소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비정규직 문제는 자녀와 가족의 문제가 됐다. 비정규직 문제를 대하는 조합원들의 생각 차이가 많이 좁혀졌다. 조합원들과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 생각이다.”

- 해외생산 비율이 늘고 있다. 현대차 단체협약에 해외생산 확대에 대비한 안전판을 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해외생산이 느는 것을 단협으로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새 집행부는 해외공장 실태조사를 언급했는데.

“지난해 해외물량이 국내물량을 추월했다. ‘해외 52, 국내 48’ 정도의 비율이다. 문제는 지부가 해외공장에 대해 확보한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다. 어느 공장에서 몇 대가 생산되고 팔리는지를 알아야 국내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장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전문가 연구용역 등을 통해 해외공장 관련 데이터를 최대한 확보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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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문용문 지부장 당선자는

86년 현대차 상용트럭부에 입사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경험한 뒤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90년 현대중공업노조와의 연대투쟁, 91년 성과분배 투쟁, 95년 양봉수 열사 투쟁, 97년 노개투,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 2000년 자동차산업 해외매각 저지 투쟁 등을 거치며 4번의 구속을 경험했다. 95년 결혼해 올해 중3이 된 딸을 두고 있다. 특별한 취미는 없고 가끔 산에 오른다.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어 짬이 나면 걷는다고 한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체 게바라 평전’. 가장 최근에 울어 본 기억은 "함께 노동운동하던 동료가 사고로 숨졌을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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