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필자는 노동자이면서 노동자가 아닌 어떤 노동자들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바로 골프장의 경기보조원들이다. 경기도의 한 유명 골프장에서 일하던 그녀들은 마흔이 되자 회사에서 쫓겨났다. 사규에 정해진 정년이 마흔이기 때문이다. 마흔이 되던 날 그녀들로부터 카트를 뺏고 필드에 못 나가게 한 것은 회사의 인사부장이었지만, 정작 해고무효확인소송이 시작되자 회사는 자신들이 그녀들을 해고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회사는 그녀들이 스스로 정한 ‘경기보조원 자치회칙’에 따라 정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한창 일할 수 있고 한창 일하고 싶은 그녀들이 스스로의 정년을 마흔으로 제한했을까. 만일 그녀들이 스스로 정년을 마흔으로 제한했다면, 지금 힘겹게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들에게 지난 십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봐야한다.

그녀들이 일하던 골프장에 노동조합이 설립된 것은 2002년이었다. 다음날 바로 경기보조원 250명 전원이 노조에 가입했다. 회사는 노조에 가입하면 ‘행복 끝, 불행 시작’이라고 경고했다. 상무와 인사부장·캐디마스터는 시시때때로 불러 무얼 해주면 노조를 탈퇴하겠느냐고 물었다. 급기야는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백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이 말은 곧 출장정지(해고)를 의미했다. 250명이던 조합원이 순식간에 40명으로 줄어들었다. 40명이 끝까지 노조를 탈퇴하지 않았던 이유는 차마 회사가 내민 각서에 서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각서에는 “앞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단체행동을 할 시에는 회사에서 조치하는 대로 따른다”는 내용이 부동문자로 인쇄돼 있었다.

단체행동권을 지키고자 했던 조합원들은 나이 서른에 동료들과 척을 지고 상사의 등쌀을 견디면서 노조를 지켰다. 마침내 2003년 회사와의 사이에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그 단협에는 경기보조원도 조합원이고 모든 조합원에게 만 55세의 정년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회사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회사는 형식적인 외관을 만들어 근로관계를 단절하고자 했다. 자신의 직원인 캐디마스터(경기보조원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와 사이에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했다. 캐디마스터는 사업자 등록을 하고, 그날부로 ‘자치회장’이 됐다. 회사의 사원이던 그녀들은 하루아침에 사업자인 ‘자치회원’이 됐다. 회사의 취업규칙은 ‘자치규칙’으로 이름만 변경됐다. 물론 그녀들의 업무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캐디마스터는 경기보조원들을 불러 돌아가면서 ‘자치규칙’에 서명을 하게 했다. 녹취록을 들어보면 한 경기보조원이 캐디마스터에게 묻는 서글픈 대목이 나온다. “자치란 것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인데, 이건 자치가 아니지 않아요?”

그녀의 질문처럼 그녀들은 스스로의 정년을 결정할 수 없었다. 자치규칙(실질은 취업규칙)은 그녀들의 정년을 마흔으로 정하고 있었고, 자치규칙을 개정할 권한이 그녀들에게 없었다. 결국 그녀들은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고, ‘자치회’라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며 자신들은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이므로 취업규칙보다 우위에 있는 단협의 정년규정을 적용해줄 것을 주장했다.

수원지방법원 제9민사부는 필자가 맡고 있는 위 사건과 88컨트리클럽 사건을 동시에 심리한 끝에 2009년 10월9일 경기보조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한다는 판결(2009가합4896)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 사이 재판부가 변경되고 위 사건은 88컨트리클럽 사건의 항소심 결과를 보기 위해 추정됐다. 그리고 얼마 전 88컨트리클럽 사건의 항소심에서 경기보조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판결이 선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40명의 조합원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모두가 마흔을 맞았기 때문이다. 마흔이 됐다고 강제로 쫓겨났지만, 누구도 나를 내쫓은 이 없는 현실을 그녀들은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정말 그녀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면, 독립된 사업자라면 왜 그녀들에게는 ‘마흔의 정년’이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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