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피엠지노무법인)

1. 서설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9조). 만약 사용자가 퇴직금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31조 상의 벌칙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31조는 ‘제9조의 규정을 위반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해 판례는 퇴직금을 미지급한 사업체의 대표자에 대한 벌칙적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형사판례이다. 따라서 당해 판례의 초점은 당해 대표자를 형사처벌할 것인지 여부에 맞춰져 있지만, 당해 판례에서 연봉계약서 또는 월봉계약서를 통해 매월 분할해 지급한 퇴직금의 효력(퇴직금분할약정의 효력)을 하나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시켜 논하고 있으므로, 이하 퇴직금 분할약정의 효력을 중심으로 당해 판례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사실관계

피고인은 약 10명을 사용해 건설업을 경영한 유한회사의 대표자이다. 피고인은 근로자들과 퇴직금 지급기일 연장에 관한 합의 없이 각 퇴직일로부터 14일이 경과하도록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 근로기준법 위반(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을 이유로 기소됐다.

피고인은 근로자들과 연봉제 또는 월급제 방식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매월 임금에 퇴직금에 상당하는 금원을 포함시켜 지급하기로 약정(매월 퇴직금 중간정산 방식의 약정)하고 이를 별도 항목으로 구분해 지급했다.


3. 쟁점의 소재

당해 판결의 쟁점은 ①근로계약서에 따라 퇴직금을 매월 분할 지급한 경우 그것이 적법한 퇴직금지급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②당해 판결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피고인에게 퇴직금 미지급에 대한 고의가 인정될 수 있는지에 있었다.

결론적으로 당해 판례에서 피고인의 고의가 부정돼 피고인에게 벌칙이 적용되지 않았으나, 이는 당해 사안의 특수한 상황(또한 피고인은 근로자들에게 각 퇴직일 이후 전별금·생활비·임금 등 명목으로 5차례 이상 금원을 지급한 바 있다는 점, 이 사건 근로자들이 피고인이 대표로 있는 유한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소송은 공소외 유한회사가 소정의 금액을 지급하는 내용의 강제조정결정 및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됨으로써 종결된 점 등)이 반영된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근로계약서에 따라 퇴직금을 매월 분할 지급한 경우 적법한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주로 살펴보기로 한다.


4. 퇴직금의 법적성격

‘퇴직금’의 법적 성질에 대해 △계속근로를 통한 기업에의 공로를 보상하기 위한 급여로 보는 견해(공로보상설) △퇴직 후의 생활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급여로 보는 견해(생활보장설) △재직중의 전체 근로에 대해 퇴직시에 일시에 지급하는 임금으로 보는 견해(후불임금설) 등이 있었으나, 기존의 판례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제공에 대한 임금 일부를 지급하지 않고 축적했다가 이를 기본적 재원으로 근로자가 1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할 때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것으로써 본질적으로 후불적 임금의 성질을 지니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당해 판례도 이러한 임금후불설을 답습해 퇴직금의 지급청구권은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유효하게 성립하는 경우가 아닌 한 근로계약이 존속하는 동안에는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판시했다.


5. 연봉(월봉)계약서에서 정한 퇴직금분할약정의 효력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8조 제2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퇴직하기 전에 당해 근로자가 계속 근로한 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미리 정산해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해 근로자가 퇴직하기 이전에도 근로자에게 퇴직금 중간정산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퇴직금 중간정산제도는 근로자가 목돈이 필요한 경우 자발적인 신청에 의해 사용자의 승낙 하에 정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으나, 현장에서는 사업주가 퇴직금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근로자들에게 중간정산할 것을 요구해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예가 매월 지급되는 급여에 퇴직금이 포함돼 있도록 연봉계약서 또는 근로계약서로 약정하는 경우다.

법정 퇴직금은 퇴직일 이전 3개월 동안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반면 퇴직금 중간정산의 경우 매년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정산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계약을 체결할 경우 퇴직 시점의 30일분의 평균임금과 퇴직금을 중간정산 하는 해 당시의 30일분의 평균임금 간의 차액만큼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내용의 계약만 체결된다면 신규사업장에서는 기존에 계획했던 급여의 전체적인 수준을 유지한 채 일정한 금액을 항목만 구분해 퇴직금으로 표시해 실질적으로 사용자가 퇴직금 지급의무를 탈피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의 계약은 근로자의 자발적인 요구가 있었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그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퇴직금제도 도입의 취지를 상당히 반감시킬 여지가 크다.

당해 판례 역시 사용자와 근로자가 매월 지급하는 월급이나 매일 지급하는 일당과 함께 퇴직금으로 일정한 금원을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퇴직금 분할약정)했다면 그 약정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8조 제2항 전문 소정의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최종 퇴직시 발생하는 퇴직금 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강행법규에 위배돼 무효다. 그 결과 퇴직금 분할약정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했다 하더라도 퇴직금 지급으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할 것이라고 판결해 이러한 퇴직금 분할약정의 효력을 제한하고 있다.


6. 결어

퇴직금의 보장은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노후복지가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근로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실질적으로 사업주들의 의사에 의해 근로자들의 퇴직금이 매년 또는 매월 중간정산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지급액이 임금상승분을 고려할 때 법정 퇴직금에 상당히 미달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지급받은 금액이 매월 또는 매년 생활비로 소진돼 결국 근로자들의 퇴직 후 생활이 위협받게 된다.

근로자들의 퇴직금 보장은 단순히 인건비의 증감의 요소로만 고려돼서는 안 되고 좀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90세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금제도가 제대로 관철되지 못한다면 국민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은퇴 후 생활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될 것이며, 이는 국가와 기업 모두에게 심각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행히도 2012년 7월26일 이후 시행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은 퇴직금 중간정산의 요건을 “주택구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근로자가 요구하는 경우”로 강화해 근로자의 청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아닌 한 퇴직금 중간정산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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