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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금융세계화 궤도 탈출 선택해야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그리스 총리가 재정긴축을 핵심으로 하는 유럽연합의 2차 구제금융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했다. 수십만의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한 달 넘게 반대 시위를 이어가자 여당이 이를 제압할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그리스 정부는 이번 국민투표를 2차 구제금융 반대와 유로존 탈퇴를 함께 묶어 진행함으로써 유로존 탈퇴에 대한 국민 불안을 자극, 구제금융안 찬성을 유도하려는 꼼수까지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시장근본주의 경제학자들과 보수언론들은 오래 전부터 그리스 사태를 복지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그리스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보편적 복지 주장을 거두라고 협박해 왔다. 이들은 이번 국민투표를 두고도 정치권이 포퓰리즘적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재정긴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훈수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 노동자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그리스 위기의 원인은 노동자 서민을 위한 복지 때문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손실을 정부가 떠안아 발생한 일이다. 그러하기에 그 해결책도 금융자본이 이 사태의 책임을 분명하게 지도록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유럽연합 정상회의는 그리스에게 복지를 줄여 자국 은행들의 빚을 갚으라고 강요하고 있지만 정작 십여 년간 그리스 자산 시장 투기로 돈을 벌며 지금의 사태를 만들어 낸 은행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지우고 있지 않다. 은행들이 그리스 국채의 50%를 탕감해 주기로 했다지만 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 격 정책이다. 1조유로 규모로 조성되는 유럽 재정안정기금을 통해 이들 은행들의 손실을 간접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그리스 2차 구제금융을 발표하던 날 은행들의 자기자본 비율을 높여 금융안정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이들 은행들을 지원할 뒷문을 열어 놓았다.

유럽연합의 금융자본 편향적 경제정책은 이번 경제위기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유로존 국가들의 부채는 2조유로(약 3천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부채 증가는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복지병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은행들이 땅 투기, 주식 투기로 잃어버린 자본을 확충하느라 늘어난 것이다. 2009년 중순 유럽연합 조사에 따르면 유로존 국가들의 은행 자본확충 및 구조조정 지원금은 7천억유로에 달했다. 그리고 은행들의 부실채권 인수 및 부실채권에 대한 보증으로 묶인 돈은 자그마치 2조3천억유로였다. 이는 직접지출은 아니지만 채권 부도에 대한 위험을 정부가 상당부분 떠안은 것으로 경제상황에 따라 큰 지출을 야기하는 것이다. 결국 직간접적으로 은행 지원에 사용된 돈이 3조유로에 달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회복지 확충에 들어간 돈은 7천억유로에 불과했다. 십수개의 은행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지원된 액수가 3억3천명의 유로존 국가 시민들에게 지원된 액수보다 크다.

그리스 시민들에 대한 유럽연합의 협박은 이번 위기극복 과정의 동일선상에 있다. 금융의 손실 해소가 시민들의 노동권·생존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유럽연합은 그 출발부터 금융 세계화의 궤도에 있었다. 유로존 탄생의 핵심은 독일과 나머지 국가들의 빅딜이었다. 99년 유로존 탄생시 독일과 나머지 국가들의 생산성 차이는 꽤 컸는데, 그리스·스페인·아일랜드 같은 국가들의 생산성은 독일의 50~70% 선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환율정책이 무력화되는 유로존에 이들 국가가 가입한 것은 독일이 보증하는 유로화가 가져다 줄 금융의 혜택 때문이었다. 강하고 안전한 통화는 자산시장을 활성화시켜 수출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은 반대로 이들 국가들이 사실상 통화가치 절하를 포기함으로써 제조업 무역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게 됐다.

이러한 빅딜의 결과 독일의 유럽 내 수출은 99년부터 경제위기 전인 2007년까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독일의 총수출 중 유럽 내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40%에서 60%로 증가했다. 반대로 21세기 자산시장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주택가격은 유로화 출범과 동시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치솟기 시작해 10년간 아일랜드 3배, 스페인 2.8배, 프랑스 2배, 그리스가 1.5배 상승했다. 독일은 수출 증가를, 그리스·스페인·아일랜드 같은 국가들은 자산시장 확대를 누린 것이다.

그리스 부도 사태는 결국 이러한 금융세계화라는 독이 든 사과를 아무런 의심 없이 먹어온 결과다. 그리스의 노동자들은 이제 그 금융세계화의 독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됐다. 결국 그리스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유럽의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 금융을 위해 탄생한 유로존이라는 괴물을 해치우는 수밖에 답이 없다. 그것이 구제금융안에 대한 거부와 연이은 국가부도, 유로존 탈퇴라는 매우 힘든 과정을 거치더라도 말이다. 유럽연합의 구제금융안을 받아 잠시 부도를 면한다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금융 거품으로 쌓은 그리스 경제가 추락을 면할 길은 없다. 유럽연합 구제금융은 유럽의 대형은행들이 자산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그리스 부도를 연기하는 것뿐이다.

그리스 노동자들에게는 유럽의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 1%에 맞선 99%의 대안 유럽을 건설해나가는 길만이 남아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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