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지역일반노조의 조합원들은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 필자가 사건을 담당했던 조합원들은 유명한 상조회사에서 장의차를 운전하며 장례를 돕는 노동자들이었다. 새벽부터 장지로 출발해 장례가 끝날 때까지가 하루 일정으로 근로시간이 매일 12시간 이상이었지만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보수를 받고 있었다.

같은 사업장에서 동일한 일을 하면서 일부는 대표이사 개인에게 고용된 형태로, 일부는 대표이사 부인이 대표로 등록한 다른 법인에 고용되는 형태로 근무했다. 형식상 사용자를 달리하는 편법적인 고용방식인 것이다. 맨 처음 고용되면 수습직으로 저임금마저 깎이고 기숙사에서 24시간 대기하다가 호출하면 언제든 장지로 달려 나가야 했다. 힘든 수습기간을 버틴 후에는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1년짜리 계약직이 됐다.

이 같은 부당함에 맞서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고자 지역일반노조에 가입했다. 이제 조합원이 된 노동자들은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런데 대표이사와 그 일가족이 경영하는 이 회사는 사업장에 노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조합원들을 협박하는 것도 모자라 가스총까지 난사했다. 사용자는 이름만 다른 새로운 법인을 만든 다음에 기존에 고용된 법인·사업자 대신에 신설 법인과 계약할 것을 종용하고, 근로기준법을 회피하기 위해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것이라는 둥 갖은 방법으로 조합원들을 회유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 조합원들이 조합을 탈퇴하고 회사에 투항했다.

신생 노조(해당 사업장에 근무하는 조합원들로 구성된 노조를 의미하고, 지역일반노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의 연약함을 파고든 사용자의 이 같은 전략에 의해 신생 노조는 반 토막이 났다. 남은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계약기간이 만료되지 않았음에도 ‘계약해지’ 방식으로 실질적인 해고를 했다. 조합원들이 노동위원회에서 승소하자 사용자는 조합원들을 복직시킴과 동시에 원래 근무하던 사업장이 아닌 다른 지역의 사업장으로 전보조치를 했다. 부당한 전보조치에 조합원들이 불복하자 사용자는 조합원들을 또다시 해고했지만,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결정에 따라 조합원들은 다시 복직됐다.

조합원들은 복직 이후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사용자는 투쟁조끼를 걸치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조합원들이 못내 눈에 거슬렸는지 복직 후 3개월 만에 기간만료라며 ‘계약해지’를 했다. 결국 회사에서 쫓겨난 조합원들은 ‘계약해지’가 부당하다며 필자에게 소송을 의뢰했다. 조합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신생 노조로서 제대로 활동해 보지도 못하고 부서지는 상황을 들으면서 ‘기간만료 계약해지’로 형식상 정당해 보이는 인사조치에 대해 ‘부당해고’라는 판단을 받고 싶었다.

1심 법원은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사용자가 주장하는 ‘기간만료’를 인정하지 않았고, 근로계약기간이 존속 중이기 때문에 계약해지는 이유가 없으며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사용자가 항소를 하지 않는지 주시하고 있었는데, 조합원들(원고들)이 필자 몰래 소를 취하했다. 나중에 다른 조합원들로부터 필자의 의뢰인이었던 조합원들이 모두 조합을 탈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투쟁했던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사라진 신생 노조는 사실상 무력해졌다. 씁쓸했지만 의뢰인이었던, 조합원이었던 그 노동자들 중 한 명과 통화를 했다. 그 과거의 조합원은 그렇게 돼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아직 남아 있는, 새로이 조합원이 된 노동자들이 떠나간 조합원들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남은 조합원은 대부분은 이제 막 노조에 가입한 상태고, 그들은 서로 동지가 될 기회도 없었다. 노동자가 동지가 되는 길은 멀고, 사용자는 그럴수록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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